[그 시절 우리는] 국민학교① 당신의 모교는 안녕하십니까

  • 입력 2017.12.01 16:07
  • 수정 2017.12.01 16:1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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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긴 해도 나라 전체를 통틀어서, 그 수가 가장 많은 친목모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초등학교 동창회’가 정답일 것이다. 같은 학교 졸업생 전체가 대상이 되는 총동창회에서부터, 졸업 연도별로 끼리끼리 모이는 동기동창회, 더 작게는 ‘몇 학년 몇 반 반창회’라 부르는 소모임에 이르기까지, 초등학교 하나에만도 졸업생들의 모임이 그 학교의 유리창 수만큼이나 많았다. 동창회가 열리는 날이면 모처럼 시골 초등학교 교정이 덩치 큰 어른들로 복작거렸다. 옛 시절에 그랬다는 얘기다.

이상락 소설가

그러나 산업화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고향 마을에서 6년 동안의 기초 의무교육을 마친 졸업생들 대부분이 타 지역으로 뿔뿔이 떠나버렸다. 그리하여 정작 시골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던 동창모임은 고향에 남아 있는 몇몇 졸업생만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농촌의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예전엔 수두룩했던 ‘부모와 자녀가 같은 초등학교 동창’인 경우는, 근래에는 기네스북에 올리자 해도 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의 동창모임은 ‘재경 ○○초등(국민)학교 동창회’처럼 ‘재(在)’자를 앞세워서, 해당초등학교 동창생의 ‘도회지 주재원들끼리’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빛바랜 추억을 되새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사이버 공간에 옛 적 초등학교 졸업생들의 사랑방을 마련해 두고서 그립던 친구들을 불러 모아 정담을 나누기도 한다. 그 모임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귀밑머리가 허연 남녀가 대폿집에 섞여 앉아 코흘리개 시절을 회상하며 너나들이로 어울려 정담을 나누는 모습은, 옆에서 바라보기에도 흐뭇하기만 하다. 그러나 화제가 엣 시절의 ‘국민학교’ 그 자체에 이르면 마냥 즐겁기만 한 것도 아니다.

“십 몇 년 전쯤에 시골 갔다가 학교에 들렀었는데, 학생이 고작 스물일곱 명 남아 있더라니까. 학교도 저기 면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의 분교가 돼버리고 말이야.”

“어이구, 옛날 얘기하고 있네. 우리 다니던 그 학교 폐교된 지가 언젠데….”

“학교가 아주 없어져 버렸단 말이야?”

“지난번에 할아버지 산소에 갔다가 옛 생각 나서 부러 들러봤는데 어휴, 귀신 나오겠더라. 교실은 먼지구덩이가 돼버렸고, 유리창은 다 깨지고…국깃대에 깃봉이 꺾여서 흔들거리는데 참 착잡하더라니까.”

“엊그제 들은 얘긴데, 교육청에서 우리 학교 건물하고 부지를 경매에 부쳐서, 외지에서 온 어떤 사람한테 넘어갔다던데?”

“아랫동네에 있던 동산국민학교 있지? 거기도 폐교됐는데 어떤 사람이 교육청에서 임대 받아서 버섯 농장으로 쓰고 있대.”

이렇게 우리들 소년기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터전들이 시나브로 사라져가고 있다. 예전에는 자연부락 두어 개 마다 하나씩 있었던 초등학교들이, 지금은 면이나 군 소재지에 있는 학교의 분교가 되거나 아예 폐교가 돼버린 실정이다. 코흘리개 시절의 향수에 이끌려 오랜만에 옛 시절의 초등학교를 찾은 졸업생들에게, 이제는 정든 교가를 들려줄 후배들도 보이지 않고, 수많은 꿈들을 키워냈던 교실들은 을씨년스러운 폐가의 모습으로 방치돼 있거나, 혹은 이미 헐려 나가고 없다.

시골 어느 고장에 있던 초등학교가 없어진다는 것, 그것은 교육인프라 하나가 사라지는 것 그 이상의 문제다. 우리 유년의 기억 속에 ‘우리 고장에서 젤 큰 건물’로 자리하고 있는 초등학교가 사라진다는 것은, 고향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없어지는 것이라 해서 과한 말이 아니다.

당신의 모교는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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