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촌 그리고 마을의 미래는?

  • 입력 2017.11.26 12:23
  • 수정 2017.11.26 12:25
  • 기자명 김훈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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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규(경남 거창)

“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 들으신지 얼마나 됐습니꺼?”

교육 차 마을을 다니는 중에 주민들에게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앞에 앉은 이들은 대부분 70~80대 어르신들이다. 무슨 그런 생뚱스런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게 정확한 기억이나 나겠느냐며 짜증이 섞인 표정도 보인다. 누구 집 자식인지 손주였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여하튼 그 기억 참 아련하다 싶은 농촌 마을의 추억, 아이가 태어나고 그것을 온 마을 주민들이 알아차리고 함께 기뻐했던, 다시는 이 마을에서 일어날 수 없는 그런 기억을 ‘억지로’ 꺼내는 듯하다.

“한 20년이나 됐나 몰러! 이제는 그런 것이 기억에도 없어!”

또 물었다. 진짜 궁금해서 물었다.

“꽃상여 메고 초상을 친 건 마지막이 언제였습니꺼?”

“허 거참! 그건 그래도 얼마 안됐지 아마. 한 10년 전까지는 초상이 나면 동네에서 돼지도 잡고 상여도 메고 했으니까! 나도 그때까지는 정정했거든!”

“앞으로 여기 계신 어르신은 편찮으시면 어쩝니꺼?”

“어쩌긴 뭘 어째? 요양원에 들어가든가 해야지. 죽기 하루 전까지 꿈적거리다가 밤에 자다 조용히 죽으면 제일 좋은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겠는가? 아프다고 자식들한테 기댈 수가 있겠어? 저거들도 힘든데. 70년, 80년 이 마을에 살았어도 아프면 다 떠나야 해!”

늙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더 서글프게끔 이딴 것을 자꾸 물어보누 싶은가 보다.

‘마을이 늙어간다’는 것은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 주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노인을 돌볼 여력이 없는 대체적인 현실과, 아이들과 그 젊은 부모들이 마을에 살 수 없는 고질적인 이유 때문에 마을이 점점 소멸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열아홉 살에 시집을 와서 60년을 마을에서 농사짓고 살며 자식 공부 다 시키고 출가시킨 마을의 할매가 불현듯 치매가 걸렸다. 서울에 사는 큰아들 집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갔다. 이 할매는 이제 돌아가셔야 다시 마을로 ‘돌아오실’ 것이다. 할매의 소원은 평생 이웃 동무들과 재미나게 살다가 안 아프고 죽는 것이었다.

이처럼 농촌의 마을은 한 사람의 노인을 돌보지 못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가 먼 전설처럼 들리듯이, 몸 아픈 노인 한 명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불안한 처지에 놓였다. 농사 규모를 벌릴 대로 벌린 마을의 장년들은 ‘사소하고 곤란한’ 노인들의 일과 처지를 행정기관이나 복지단체가 해결하길 바라며, 그런 장년들마저 마을을 떠나 읍내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출퇴근 농사를 짓는 것이 다반사다. 또한 그들의 방편이자 농촌에서의 생존전략이다. 농촌을 떠나지 않는 게 어디인가! 농사를 짓는 이 처지가 대견할 따름인 것이다.

소득이 높은 마을에, 큰 사업이 빈번하게 잘 들어가는 그런 마을에 인구가 늘어날까?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순간적인 주민의 증가는 자연감소분을 따라가지 못한다. 젊은 귀농귀촌 가구의 유입과 귀한 출생으로 인해 마을에 아이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라도, 많은 농촌 마을의 소멸이 이미 순위가 매겨지고 있다.

새 정부 국정과제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마치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듯 해마다 깜빡깜빡하고 귀농귀촌에 목을 매는 ‘돌아오는 농촌정책’이 아니라, ‘떠나지 않는 농촌정책’이 될 수 있도록 버티고 살아남는 마을의 미래를 전혀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그곳에 살고 있는 아이 한 명, 청년 한 명을 위해서 마을은 진짜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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