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죽은 농협

  • 입력 2017.11.24 12:50
  • 수정 2017.11.24 12:51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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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의 산지폐기 지원은 농협 계약재배 농가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는 농협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계약재배를 유도하기 위한 정부의 지침이다. 폭락 시 산지폐기 지원을 받을 여지가 있다는 것은 계약재배가 갖는 커다란 메리트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일선 지역농협들이 조합원들에게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다. 주산지가 아니기 때문에 관심이 없는 것일 수도 있고, 굳이 나서서 챙기기가 귀찮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계약재배. 이래저래 번거롭게 일만 늘고, 조합원들과 싸울 일은 잦아지고, 그렇다고 돈이 되긴커녕 걸핏하면 밑지기 일쑤인, 지역농협에겐 애물단지 같은 사업이다.

사실 산지폐기 신청은 파이 싸움이다. 한정돼 있는데다 턱없이 부족하기까지 한 배정물량을 여러 농협이 나눠 가져간다. 신청하는 조합이 많아질수록 조합당 돌아가는 배정량이 줄어든다. 신청을 많이 한다고 수급조절 효과가 커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주산지 중심으로 가져가게 놔둬도 거시적으로는 딱히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조합원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문제다. 어쨌든 계약재배를 제대로 홍보하고 열심히 뛰는 농협의 조합원들은 일부나마 폭락 상황에서 산지폐기 지원의 혜택을 누리고, 그렇지 않은 농협의 조합원들은 산지폐기가 뭔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행정편의주의, 무사안일, 타성. 농협이라면 공무원들보다 더더욱 경계해야 할 것들이다. 농협의 존재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농민이다. 농민 조합원을 위해서라면 싸우고 괴롭고 손해보는 일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농협은 그래야만 비로소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산지폐기 지원 신청을 하겠다는 조합원의 문의에 어떤 농협 직원은 “우리 지역은 재배면적이 적어 지원대상이 아니다”라고 둘러댔다고 한다. 짓말이다. 산지폐기 지원은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그리고 계약재배에 참여하면 1순위 대상이 된다. 세상에는 이렇게 죽은지 오래 돼 썩은내를 풍기는 농협들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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