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한식재단과 미슐랭 ‘별별’ 이야기

  • 입력 2017.11.24 10:32
  • 수정 2017.11.24 10:33
  • 기자명 정은정 <대한민국치킨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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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온도’라는 드라마가 근래 인기였다. 이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셰프다. 그가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이 어려워지자 그렇게 따내려 하던 것이 바로 ‘미슐랭의 별’이었다. ‘미쉐린 가이드’ 라고도 하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미쉐린 타이어 회사가 만드는 일종의 여행과 식당 안내서이다. 음식점을 별점으로 매겨 여행객들에게 가볼만한 식당을 안내해 준다는 의도다. 암행어사처럼 몰래 와서 손님처럼 먹고 가서 별점을 매긴다 하는데 그 비밀이 잘 지켜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장 높은 단계의 별점은 세 개고 이는 곧 훈장과도 같다. 한국에도 별 세 개를 받은 한식당이 두 곳이다. 하지만 미슐랭 별 한 개 받기도 어려워 별 한 개만 받아도 굉장한 홍보 효과가 있다. 요즘 카스 맥주 광고를 찍은 고든 램지라는 유명한 영국 요리사에게 따라붙는 별칭도 ‘미슐랭 스타’다. 그만큼 전 세계 요식업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매체다.

미슐랭 가이드 한국판은 작년에 처음 발간됐고 올해로 두 번째다. 문제는 이 사기업 매체에 한국관광공사와 농식품부 산하기관인 한식재단도 미쉐린 가이드 발간에 세금을 투입했다는 것이다. 두 기관 합쳐서 그 액수가 20억 원 정도. 국가 살림의 규모가 있으니 큰돈이다 아니다 문제를 삼자는 것은 아니다. 짚어야 할 문제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세금 집행의 당위성이다.

한국의 관광산업을 진흥하고 한식을 알려야 한다는 충심이었다 치고, 사업의 목적이 합당해서 사기업에 세금을 썼으면 그 용처라도 제대로 밝혀야 한다. 이를 묻고 대답을 요구하는 것은 납세자의 당연한 권리다. 그런데 국감장에 나온 정창수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미쉐린 사와 맺은 ‘비밀유지계약’ 때문에 구체적인 계약내용을 밝힐 수 없다며 국회의원 추궁에도 버텼다. 최순실과 차은택을 위시한 국정농단 세력이 가장 많이 관여한 영역이 문화와 관광 쪽이었다. 자기들끼리 해먹자고 사람을 심었다 빼냈다 하는 복잡한 과정이 있어왔던 곳이다. 아직도 속 시원히 최순실의 문화계와 미르재단과의 관계성에 대한 의혹이 풀리지 않은 상태다. 절차적 정당성 없이 낙하산 인사로 많은 의혹을 받았던 한식재단 윤숙자 전 이사장은 임기도 못 채우고 사임하면서 한식재단은 여전히 이사장 공석 상태다. 무주공산의 조직에서 지금은 각국 공공기관과의 업무협약(MOU)을 맺어 한식 확산의 거점을 마련한다는 명분으로 이탈리아, 프랑스, 스웨덴 등지로 신나게 해외 출장을 다니고 있다.

나는 한식재단의 정체성을 이 지면에 적시한 적이 있다. 중언하자면 한식재단은 농림축산식품부 산하의 공공기관으로 ‘한식진흥 및 음식관광 활성화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농산물가격안정기금과 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가 지원되는 조직이다. 세금을 받아다 살림을 꾸리는 공공 기관은 재원의 출처와 용처가 맞게끔 살림을 해야 한다. 농식품부의 예산은 농업과 식품에 쓰여야 한다. 농산물의 유통과 가격 지지를 위한 흐름 속에서 아껴 써야하는 돈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미슐랭 가이드 발간에 수억 원을 투하하는 것이 과연 저 목적에 부합할까.

지난 10월 한식재단은 ‘한식진흥원’으로 개명을 했다. 전 정부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간판 바꾸는 일이 잦은 정부기관에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한식재단’의 환골탈태는 간판 바꾸는 일로 대신할 수 없다. 주야장천 했던 말. 해외에 한식을 알려 한국 식재료 수출에 정말 도움이 됐다면, ‘증거’를 가져오라. 만 7년이 된 조직이라면 이제 그럴 때도 되지 않았나. 농민들과 시민들에게 당당하다면 그때 비로소 ‘진흥원’이란 이름에 걸맞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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