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농업·농촌 위기 극복 위한 ‘농민헌법’ 제정 강력 촉구
쌀값·개방농정·농협적폐 … 산적한 농업과제 상기시켜

  • 입력 2017.11.24 10:08
  • 수정 2017.11.26 17:06
  • 기자명 배정은·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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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배정은·한우준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에서는 ‘농민권리와 먹거리 기본권 실현을 위한 전국농민대회’가 열렸다.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갑작스런 한파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 추산 약 1만여 명의 농민들이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을 가득 메웠다. 상식과 인간미를 겸비한, 전례 없는 청와대의 행보에 각계에서 환호를 보내고 있지만 오직 농민들만큼은 촛불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산적한 농업 적폐를 해결하고 쓰러진 농촌을 일으켜 세울 국가의 손길은 아직 그림자도 구경하기 어렵다고들 입을 모은다.

이들이 정부와 국회를 향해 내건 요구사항은 헌법개정, 농정개혁, 농협 적폐청산, 한-미 FTA 폐기, 쌀값 1kg 3,000원 보장. 그 중에서도 핵심은 ‘농민헌법’ 제정을 통한 농민 기본권의 제도적 보장이었다. 30년 만에 찾아 온 개헌 정국은 우리나라 농업 현실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절호의 기회다. 농민들은 농업이 존폐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농민의 기본권 보장을 통해 지속가능한 농촌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외쳤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서 열린 ‘농민권리와 먹거리기본권 실현을 위한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1만여 명의 농민들이 상징의식으로 ‘농민헌법’, ‘한-미 FTA 폐기’가 적힌 깃발을 들고 차전놀이를 하고 있다.

“농민헌법, 촛불혁명의 완성이자 농정개혁의 시작”

농민과 소비자 대표로 각각 나선 김영호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상임대표와 곽금순 한살림연합 대표는 대회사에서 “정치권력이나 지방권력 문제에 빠지지 말고 민중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개헌에 나서야한다”며 “민중이 직접 권력을 잡고, 나라다운 나라를 건설하는 개헌을 (문재인정부가)포기한다면 박근혜를 물리친 민중이 직접 나서겠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경고했다. 현재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비협조적인 태도 등으로 인해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해진 상황에 대해 일침을 날린 것이다.

정의당과 민중당은 당 대표가 직접 대회에 나와 ‘촛불정부의 시작이 고 백남기 농민으로부터 시작됐다’며 개헌을 통한 촛불혁명의 완성을 강조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농민들이 피눈물 흘리는 세상을 바꾸고 국민으로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고자 촛불을 들었던 것 아닌가”라며 “우리 농민이 수천년동안 이 땅의 먹거리를 책임져 온 만큼 당당히 주인으로 대접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촛불혁명의 완성”이라고 말했다. 김종훈 민중당 상임대표는 “FTA에 몸살 나고 잘못된 정책에 골병드니 농민들의 마음은 너덜해졌다. 100대 국정과제에 농민정책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어도 지켜보겠다던 농민들이다”라며 “지금도 국회에서 예산 이야기를 하는데 농업·농민 이야기가 한 마디 없다. 농업정책을 제대로 해야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은 단상에 오르자마자 “농민헌법 쟁취하자”, “농정, 대개혁하라” 두 구호를 직접 선창하며 농민들의 제창을 유도해 눈길을 끌었다. 설 위원장은 “농민헌법은 쟁취해야 한다. 그냥 될 것 같지 않다”며 “박근혜를 몰아냈던 촛불처럼 국민의 힘으로 돌파해야한다.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더 수고를 해주셔야겠다”고 격려했다.

조병옥 전농 사무총장은 “123년 전 동학농민혁명 때 넘지 못했던 우금치를 ‘전봉준투쟁단’이 되어 넘고 광화문까지 진격해 박근혜정권을 끝장내고 새로운 권력을 세웠다”며 “모든 혁명의 결실은 제도적 법적 장치 개헌으로 이뤄진다. 농업·농민·농촌의 내용이 헌법에 담겨야 촛불혁명이 제대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 과제는 역시 쌀값 문제다. 김도경 전농 충북도연맹 의장은 “20년 넘게 쌀값 이야기를 해온 것 같다. 얼마 전엔 우선지급금 860억원을 돌려달라는 등 농민들에게 (농업문제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박근혜도 쌀값 21만원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세워진 문재인정부는 아무 이야기도 없다. 농업에서 되풀이 되는 악순환은 정부가 근본적인 대책 마련으로 끊어야 한다”고 연설했다.

농민들은 “오늘 모인 우리들은 11월과 12월 시군 농민대회를 개최, 정치권력에만 안주하고 개헌을 반대하는 자유한국당과 국민들의 개헌요구를 가로막는 세력들을 심판할 것이다”라며 “촛불항쟁의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는 촛불이 요구한 주권자로서의 국민의 권리,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라고 요청했다.

농민대회를 마친 1만여 명의 농민들이 ‘농민헌법 쟁취’,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 등이 적힌 대형 현수막을 앞세우고 국회의사당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한-미 FTA는 ‘폐기’ 농협은 ‘적폐청산’

지난 10일 산업통상자원부의 일방적인 폐회 선언으로 마무리됐던 ‘날치기 공청회’는 농민들의 연대를 더욱 끈끈히 한 계기가 됐다. 지난 15일 ‘FTA 농수축산대책위’를 출범한 데 이어 2017년 전국농민대회에는 예년과 달리 전국한우협회(회장 김홍길)가 주최단체에 이름을 올렸고, 대한한돈협회(회장 하태식)도 여의도광장에 자리를 함께했다.

농민들은 결의문을 통해 “공청회에 제출한 경제 타당 보고서는 국민을 농락할 정도로 부실했고 국민들의 의견을 담고자하는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며 “한-미 FTA 협상은 쌀 수입과 농축산업 개방 등 농업의 희생을 전제로 한 미국의 일방적 이익만을 위한 불평등한 협상”이라며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파면과 한-미 FTA 개정협상 중단 및 폐기를 강력히 요구했다.

김홍길 한우협회장은 단상에 올라 “한-미 FTA는 미국에서 폐기발언을 했음에도 우리나라는 개정협상을 하겠다고 한다”며 한-미 FTA 폐기를 강력히 촉구하는 한편 “농협중앙회는 조합원인 농민을 상대로 수익을 창출하며 돈 잔치에 여념이 없다. 농협이 바로 설 때까지 앞장서겠다”며 농협중앙회를 바로잡자고 역설했다.

농민들은 지난 50여년 동안 농협조직의 이익만을 우선해 공룡이 된 농협이 각종 자금과 사업으로 농민을 옭아매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새시대·새정부의 적폐청산 기치를 이어 농민을 위한 농협으로 거듭날 것을 천명했다.

농민들은 대회를 마친 뒤 차전과 풍물패의 기세를 앞세워 여의도 일대 시민들에게 농민헌법의 필요성을 알리는 행진을 시작했다.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범국민대회’가 열리는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한 농민들은 노동자, 시민들과 함께 남은 국가 적폐의 시급한 청산을 요구했다.

 

“제주 제2공항 건설계획 중단!”

멀리 제주에서 추위를 뚫고 서울 여의도로 한달음에 달려온 제주 농민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띈 것은 ‘제2공항 결사반대’ 깃발이었다.

제주도가 국토교통부에 제2공항 건설 조기추진을 요청하면서 ‘제주 제2공항 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대책위)’는 지난달 10일부터 도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대책위는 사전 타당성조사 용역보고서의 부실과 전략환경영향평가의 왜곡을 지적하며 제2공항 건설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 지난 20일에는 42일째 단식을 이어오던 김경배 대책위 부위원장이 건강악화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시민단체 회원들이 뒤를 이어 릴레이단식과 동조단식을 진행하고 있다.

신공항 부지로 선정된 성산읍 일대는 무를 주요 밭작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농민들이 많아 제2공항 건설이 그대로 추진될 경우 농민들의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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