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자약’ 수급대책에 속 타는 배추농가

농가 “추가 시장격리 조치 시급”
농식품부 “현재 배춧값 좋은 편”
수급조절매뉴얼 기준가격 딜레마

  • 입력 2017.11.18 23:08
  • 수정 2017.11.18 23:1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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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가을배추 출하에 맞춰 현격하게 떨어진 배춧값에 농민들이 울상짓고 있다. 보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수급대책이 절실하다는 입장이지만, 절박한 농민들과는 달리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영록)는 사태를 다소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다.

추석 이후 급격히 떨어진 배추 도매가격은 지난달 중순부터 하향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10kg당 3,000~4,000원대 가격을 유지하면서 이따금씩 5,000원선을 건드리는 양상이다. 산지에선 평당 6,000원대의 포전거래 가격이 5,000원대까지 내려가고 상인들의 계약파기 우려도 짙어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원장 김창길)은 평년대비 가을배추 초과생산량을 4만1,000톤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농식품부의 시장격리 계획물량은 그 절반인 2만톤에 불과하다. 생산안정제 8,000톤에 농협 계약재배 3,000톤, 정부수매 9,000톤을 모두 합한 수치다.

급락한 배추가격에 농민들이 적극적인 수급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농식품부는 “최근 가격이 나쁘지 않다”는 입장이다. 지난 15일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서 한 농민이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민들은 김장철이 지나가기 전에 최소한 초과물량 4만여톤을 전량 시장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장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유통시장에 확실한 시그널을 주지 않는다면 겨울배추까지 연쇄폭락을 피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달 초 전남 해남·진도 등 주산지 농민들은 현장을 찾은 농식품부 담당자들에게 이같은 의견을 강력히 피력했다. 당시 농식품부도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는 전언이지만, 수급대책은 결국 초안대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2만톤 시장격리를 진행한 뒤 나머지 물량은 12월 수급상황을 고려해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나마 진행 중인 2만톤 시장격리도 김장 성수기를 넘겨 마무리될 것으로 보여 골든타임을 놓칠 것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현장과 정책 간의 괴리는 근본적으로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차에 기인한다. 농식품부는 현재 배추가격의 심각성을 농민들보다 가볍게 진단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최근 배추가격이 수급조절매뉴얼상 좋은 편에 속한다. 게다가 올 겨울 라니냐 현상으로 한파가 올 가능성이 있어 향후 작황을 좀더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민들에게 지금 배춧값은 바닥 수준이다. 김영동 전 해남군농민회장은 “10kg 상품 도매가격을 5,000원이라 쳐도 운송비에 상차비, 도매시장 수수료 등을 제하면 포기당 간신히 1,000원이 된다. 하물며 중·하품은 100~200원이 고작”이라고 호소했다.

농식품부 시각의 근거가 되는 농산물 수급조절매뉴얼은 최근 7개년의 평균가격을 기준가격으로 삼는다. 하지만 최근 7개년 중 2012년과 지난해를 제외하면 가을배추 가격은 꾸준히 올해보다 낮은 가격을 형성해 왔다. 따라서 농민들 시각에선 정부의 기준 자체가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은 “가격이 매년 낮게 형성된다면 최근 몇개년 가격보다도 생산비에 근거한 적정가격을 정책의 기준으로 삼는 게 옳다. 문제는 지금 통계청 배추 생산비 통계의 오차범위가 ±15%라 통계학적으로 의미없는 자료라는 것이다. 통계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선 표본을 늘리고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데, 예산이 받쳐주지 않으니 방법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가을무 시장격리 물량은 수출 1,000톤을 포함해 총 1만9,000톤이 될 전망이다. 평년대비 초과예상분 1만7,000톤을 넘는 양이지만, 아직 가격상승 효과가 미미하고 월동무 재배면적이 기록적으로 늘어나 있어 배추와 마찬가지로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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