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딸 이기정 할머니 당진시민장 엄수

  • 입력 2017.11.17 14:09
  • 수정 2017.11.17 14:11
  • 기자명 김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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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희봉 기자]

지난 11일 충남 당진시 송산면 오도리에서 농사지으며 살아온 일본군위안부 이기정 할머니가 93세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은 지난 13일 시청앞에서 전국 최초로 당진시민장(사진)으로 엄수됐다.

이명남 당진시민장례위원장은 추도사에서 “이기정 할머니는 지독하게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났기에 위안부로 끌려간 것”이라면서 “그 당시에 이장과 연만 있었어도 다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도 조사에서 “이기정 할머니가 꽃다운 나이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온갖 수모와 고초를 당하셨는데 결국 오늘 우리 곁을 떠나게 됐다면서 부디 영면하시라”고 추모했다.

이기정 할머니는 1943년경 버마전선으로 끌려가 해방될 때가지 일본군위안부로 고초를 겪었고 해방 뒤에도 서울에서 식모생활을 하며 어렵게 살았다. 이웃집에서 살았다는 농민 유양수씨는 “느지막이 온 고향에서 죽은 남편 김씨를 만나 농사지으며 살다가 현재의 오도리 집으로 이사와 살았다”고 밝혔다. 또 김영란 오도리새마을부녀회장도 “할머니는 위안부 사실을 아버지에게만 털어놓고 숨겨오다가 알려졌을 때도 담담했지만 마음속의 상처로 인해 외부와 접촉을 끊었다”고 회상했다.

오도리 주민들은 특히 “오래전부터 어렵게 혼자사시는 할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장례만큼은 마을에서 하기로 했는데 시민장으로 하게 돼 다행이다. 그러나 정작 살아생전에 얼굴 한 번 보이지 않던 정치인들이 몰려와 생색내는걸 보니 마음이 아프다”고도 했다.

당진시에서 돌봄 시설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국가가 위안부협정을 졸속으로 체결하는 것보다 위안부생활로 당한 정신적, 육체적 상처의 치유가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한편, 장례와 추모기간에 농민단체 대표들이 보이지 않아 의아함을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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