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1월 11일’은 가래떡데이? 농업인의 날?

  • 입력 2017.11.17 14:02
  • 수정 2017.11.17 14:04
  • 기자명 정경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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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정경숙 기자]

지난 10일 철원군농민회는 농민주유소·지역농협과 협력해 가래떡데이 행사를 치렀다. 아이들에게 맛난 떡을 주기 위해 며칠 동안 사전 준비 작업을 하고, 행사 당일엔 찬바람 부는 아침 길 밟아 떡을 날랐다.

8년째로 접어든 행사, 해마다 커져 올해엔 철원관내 21개 학교(공립유치원 포함)의 아이들이 오대쌀로 만든 찰진 가래떡 맛을 봤다. 철원의 아이들은 이제는 안다. 11월 11일은 따뜻한 가래떡을 먹는 날이라는 것을. 화려하고 달디 단 빼빼로를 예쁘게 포장해 동무들과 나눔하고 싶지만, 절대로 가져오지 말라는 선생님 말씀을 기꺼이 따른다. 농민회원들이 “오늘은?” 물으면 거침없이 “가래떡데이!”라고 답한다. “난 빼빼로보다 가래떡이 좋아요”라며 넉살을 떠는 아이들도 있다. 이 순간에만 머물면 농민들은 행복하기 그지없다.

가래떡데이 행사를 한 이날 서울에선 ‘한-미 FTA 개정협상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지만 농민들의 반발 속에 중단됐다. 농민들이 허탈한 한숨을 짓고 있을 때, 정부 세종컨벤션센터에서는 ‘제22회 농업인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참석한 정부 관료들은 농민과 소통하고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FTA 개정협상 공청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태도, 이것 역시 요식행위인가?

14일 강원도에서 열린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선 기업형 새농촌사업 우수 마을도 상을 받았다. 기업형 사업이 농촌을 살릴 수 있다는 발상이 위험천만해 보인다.

밀려들어오는 수입농산물과 정체모를 서양문화에 맞서서 농민들은 가래떡을 높이 들었다. 우리 농촌과 농업, 안전한 먹거리와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가래떡 행사를 해왔지만 빼빼로의 매출은 올라가기만 한다. 올해도 연간 매출의 절반 이상을 11월 한 달에 달성할 것 같다고 하니 씁쓸할 뿐이다.

농촌 현실과 농민의 마음이 정확히 담긴 법과 정책만이 가래떡데이를 진정한 농민의 날로 자리 잡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철원군농민회는 11월 11일, 노동당사 앞에서 제 2의 가래떡 행사를 진행했다. 연탄을 피워 가래떡을 굽고 오대쌀 조청을 발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대접하며 ‘농민헌법 제정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펼쳤다. 마침 지역장터인 ‘DMZ 마켓’이 열리는 날이라 지역민은 물론, 철원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찰진 가래떡 맛을 톡톡히 보며 흔쾌히 서명을 하고 갔다.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국민 모두가 11월 11일=가래떡 데이!=농민의 날! 임을 알게 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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