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농기계 박람회를 다녀오면서

  • 입력 2017.11.17 13:26
  • 수정 2017.11.17 13:28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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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작목반 나들이가 있었습니다. 매년 나다니던 것을 격년으로 바꿔서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김치 담고 안주시키고 간식봉지 싸고 무엇보다 사람 챙기는 부담이 확 줄었으니까요. 이제 대부분 추수가 끝났으니 마음이 가벼운 즈음에 타지로 나들이 가는 즐거움은 확실히 농민들만이 느끼는 여유인 듯합니다. 남도까지 덮친 가을을 만끽하며 말입지요.

초창기에는 작목의 특성에 맞게 시금치나 마늘 주산지에 다녔는데 지금은 다닐 만큼 다닌지라 호기심을 채워줄 마땅한 선진지(?)가 없어서 농업관련 전시장을 찾기도 합니다. 역시나 빠질 수 없는 곳이 농기계 박람회장입니다.

올해는 김제 벽골제에서 한다하니 남도의 바닷바람을 몰고 신이 내린 지평선의 고장으로 다랑논지기들이 가게 된 것입니다. 톤백 나락을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다니는 것도, 탁 트인 지평선과 커다란 모눈종이 같은 들판 풍광은 보너스입니다.

농기계 박람회장을 찾는 농민들은 어떤 생각들을 할까요? 함께 그들의 발길을 따라 그들이 흘리는 비평을 따라 가 봅시다. 입구에서부터 커다란 위용으로 100마력이 넘는 트랙터가 폼을 잡고 서 있습니다.

‘이거, 2년 전에 내가 손톱으로 표시해놨던 게 그대로 있네. 아직도 안 사갔나?’ 내가 못 사니 남들도 안 샀으면 하는 바람인가 봅니다. 실상 농민의 처지와 농업의 현주소가 일치하는 장면입니다.

또 한참을 걸으니 벼를 이앙하듯 온갖 채소, 가령 양파나 배추처럼 육묘판에 키운 것들을 심는 채소이앙기가 있습니다. ‘아이쿠야 농민들 팔자 고쳤네. 인자 일 안 하고 살아도 되겠구먼’ 사고 싶은 마음보다 비아냥이 앞섭니다. 워낙 비싸니까요.

그러다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에 가보니 역시나 안전한 예초기 날을 판매하는 곳입니다. 비로소 편한 얼굴을 한 농민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큰 기계 중 일부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일 테지요. 정교한 기계를 만든 이 또한 농민들의 절박함을 쓰임새 있는 농기계로 만드느라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연을 담은 농기계 박람회장의 농민들 생각은 또 수천수만 가지 번뇌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농사일의 고단함을 풀어줄 농기계들 앞에서 그 농기계들 사느라 더 고단해지는 삶을 사는 농민들에게 농기계는 애증의 대상입니다. 더군다나 농기계는커녕 아직도 농기구수준에 머물고 있는 여성농민의 상황은 또 어쩌란 말입니까? 농기구 박람회라도 열어야 하는 건가요?

수요와 공급의 법칙만이 있는 장터에 정책이라는 내용의 공공성이 개입되어야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농민들의 관심과 표정이 어디에 머무는 지, 농기계로부터 소외되는 농민은 없는지, 아직도 손도 못 대고 있는 미개척 농기계분야는 무엇인지 유심히 살피는 따뜻한 눈길이 그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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