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농협 ‘윤리경영’ 현실화되려면

  • 입력 2017.11.10 16:47
  • 수정 2017.11.10 16:52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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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농협이 지난 2일을 ‘농협 윤리경영의 날’로 지정했다. 11월 2일을 숫자로 보면 1,102고 이를 발음하면 ‘천백이’다. 이에 농협은 ‘청백리(淸白吏)’ 정신을 본받고자 이날을 윤리경영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농협은 이날 깨끗함을 상징하는 흰색의 백설기를 나눠주며 범농협 임직원 대상 캠페인도 벌였다.

농협이 청백리 정신을 본 받아 윤리경영에 나서겠다고 하니 환영할 일이다. 다만 선언적 구호에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볼 뿐이다. 이런 바람을 갖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농협중앙회부터 지주, 계열사, 지역농축협에 이르기까지 각종 비리가 만연해서다. 실제로 매년 국정감사에선 농협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큰 변화로 이어지진 않았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채용비리, 납품비리, 특혜대출 등 어김없이 의원들의 질타가 반복됐지만 증인으로 나선 농협 임원들은 “잘 들여다보겠다”거나 “확인해보겠다”는 말로 시간을 때울 뿐이다. 국정감사가 이 정도인데 앞서 이뤄진 자료 제출은 어땠을까. 이 또한 형식적일 뿐이다.

예를 들어 농협은행이 사회공헌 사업에 매달 100억원을 사용하는데 이게 은행장의 사금고처럼 이용되고 있다는 제보를 받은 의원들이 국정감사가 끝나는 시각까지 자료를 요청한 끝에 겨우 자료를 받았지만 간단한 목록만 있을 뿐이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조합장을 하기 위해선 얼마의 돈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현장에선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농협중앙회의 방만한 경영이 이런 작은 부패들이 모여 이뤄진 것은 아닐까. 역대 회장들이 대부분 임기 말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거나 구속된 점에 비춰보면 꼭 아니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나마 개혁적 성향으로 일컬어지는 김병원 회장조차 당선 뒤 집무실에서 황금열쇠를 받았다거나 선거운동에 나섰던 사람을 영전했다는 풍문이 나돌고 있으니 말이다.

전국협동조합노조는 논평을 통해 “청백리도 좋지만, 농협중앙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추상같은 송나라 시대의 판관인 포청천일 것이다. 농협의 케케묵은 적폐 청산이 시작되고서야 청백리도 가능한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좋은농협만들기운동본부가 개최한 농협 개혁 토론회에선 현장의 농민들이 외쳐야 농협 적폐청산도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농협이 자체적인 윤리경영을 이뤄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런저런 현실에 비쳐보면 큰 기대감을 갖기 어렵다. 결국 현장의 농민들이 포청천이 돼야만 농협의 윤리경영도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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