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총회, ‘밥 먹고 합시다’는 이제 그만

  • 입력 2017.11.10 16:36
  • 수정 2017.11.10 16:43
  • 기자명 김순재 전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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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밥 먹고 하자’는 농협 총회 중에서 다음해의 사업을 편성하는 임시총회가 있는 달이다. 농협의 총회 중에서 1월말, 2월초에 개최하는 정기총회가 시끄러운 경우가 많지만, 아무래도 깊이 있는 총회는 매년 11월에 열어 다음해의 사업을 확정짓는 임시총회이어야 한다고 본다. 대부분의 농협은 11월 임시총회에서 비상임 임원들과 대의원들로 꾸려진 분과위원회를 열어 사업들을 점검하고 조합원들의 의견을 받아서 그 다음해의 사업을 확정 짓는다.

그런 임시총회를 해야 하는 농협에서 회의가 조금 길어지면, ‘밥 먹고 하자’라는 발언을 하는 대의원들이 있다고 한다. 실제 우리 농협에서도 발언권 없이 그와 비슷한 발언을 하는 대의원을 본 적이 있다. ‘밥 먹고 하자’는 대의원들 때문에 자기 농협의 사업에 어찌 의견을 내어 보겠다며 잔뜩 준비해온 대의원끼리 싸워서 ‘마음이 상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었다. 오래된 간부직원들의 이야기로는 과거에 우리 농협도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했었다.

농협이 임시총회를 오전 9시부터 개회해서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대개는 오전 10시 30분 정도에 회의를 시작한다. 아침부터 일에 바쁜 농민들이 밥 한 술 뜨고 다시 일을 하다가 회의에 나와 낮 12시가 넘어가면 배가 출출하기도 할 것이다.

대의원 회의 자료를 충분히 보지도 않았고, 봐도 이해도 잘 안 되고, 학습도 전혀 안된 농민 대의원에게는 토론이 지겨울 수도 있을 것이다. 별다른 식전 행사 없이 사업을 설명하고 의견을 받고, 사업을 확정 짓는 11월 임시총회는 ‘토론’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농민들에게 낯선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농협 총회에서 사주를 받았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런 분위기에 편성해서 회의가 열띠게 진행되는 시간에 중간쯤의 자리에서 ‘밥 먹고 합시다’라고 얄궂은 추임새를 넣으면 정말 회의 분위기는 망쳐버리게 된다.

그러면 또 다른 쪽의 일부 대의원들이 ‘그만 마치자’ 혹은 ‘말 많으면 빨갱이다. 그만하자. 그리한다고 되나?’라고 해서는 회의 분위기를 파장으로 끌고 가고 실질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않게 해서 원안(?)의 안들로 사업을 확정해 버리는 것이다. 지금은 각 농협의 내년 사업을 확정짓는 그 11월이다.

11월 임시총회에서 다음해의 사업을 확정짓는 과정이나 1월말, 2월초에 개최하여 지나간 해의 사업을 결산하는 정기총회에서나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밥 먹고 합시다’라는 종류의 발언 중에 내가 본 압권은 ‘말 많으면 빨갱이다. 그만하자’였다.

최소 1주일 전에 각 대의원에게 교부된 총회 자료를 충분히 보고 온 대의원에게는 1시간이 매우 짧을 수도 있고, 아예 자료도 보지 않았고 한글 해독도 의심(?)스러워 보이는 대의원에게는 ‘몇 페이지가 어쩌구 저쩌구’하면서 발언을 길게 하는 대의원이 싫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발언 좀 합시다’하여 대의원으로서 충실한 조합원과 ‘밥 먹고 합시다’류의 대의원들이 대립하고 있을 때, 뜬금없이 ‘말 많으면 빨갱이다’라는 대의원을 본 적이 있다.

단언컨대 저는 조합장으로 있었던 시기에 ‘밥 먹고 합시다’라는 발언을 하도록 대의원에게 사주한 적이 없지만 일부에서는 해당농협의 집행부가 그런 류의 발언을 사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각 농협의 총회는 농협 사업 및 안건에 대한 농민 대의원의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해 농협이 지역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다. 그만큼 총회를 준비하는 조합장과 이에 참석하는 대의원의 자세 또한 중요하다. ‘수박 겉 핥기’식 총회가 되지 않으려면 농민 대의원들의 더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헉, 말 많으면 빨갱이?

조합장을 1년 정도 하고 나서는 효율적인 총회를 위한 약간의 요령이 생겨 (임시·정기)총회를 앞두고 조합원들의 의견을 받겠다는 연락을 문자로 보냈었다. 다수는 묵묵하지만 연세가 좀 있는 대의원들은 긴 회의를 싫어하는 것 같았기에 회의 시간을 줄이면서도 발언을 다 하게 하거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상당한 학습을 하여 준비를 한 대의원은 총회에서 발언을 하고 싶어 하고 답을 듣고 싶어 했다. 그래서 총회를 앞두고는 ‘농협 사업에 관련된 내용’과 ‘회의 안건과 관련된 의견’을 줄 조합원·대의원들을 농협으로 미리 나오도록 해 의견을 받아 회의 시간을 줄였다. 회의 시간이 짧아지기는 했지만 농민들은 그래도 회의가 길어지는 걸 아주 싫어하는 분위기였다.

조합장 초임기였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어느 총회를 앞두고 농협을 방문한 대의원께서 총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발언하고 싶어 했다. 당연한 대의원의 권리이고 의무이니 총회의 흐름을 예측해서 어느 시기에 발언권을 요청했고 효율적인 발언을 위해 내용을 조정해 발언을 했다.

그 대의원이 발언을 시작하고 3분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중·후미쯤에 앉아 있던 대의원 한 분이 뜬금없이 ‘말 많으면 빨갱이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말로만 들어온 ‘밥 먹고 합시다’류의 총회가 우리 농협의 총회자리에서 내 눈 앞에서 펼쳐졌다. 발언 중이던 젊은 대의원(젊은 대의원이라 하더라도 저보다는 나이가 많았음)은 나이가 상당한 대의원이 ‘빨갱이’ 운운하니, 농촌 정서상 뭐라고 반박도 하기 힘든 그런 순간이었다.

농협 회의 자료를 보고 우리 농업협동조합의 사업이 ‘이랬으면 좋겠다’고 열심히 발언하고 있는 대의원에게, 겨우 3분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말이 많으면 빨갱이다’라고 발언하는 대의원이나 그런 발언에 작은 소리지만 소리 내 웃는 여러 대의원을 보면서 총회 의장이었던 나는 대의원의 발언을 중지시키고, 대의원들에게 잠시 의사진행의 협조를 요청했다.

(고백하건데)나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공산주의자는 빨갱이다’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발언 시간을 두고 ‘말이 많으면 빨갱이다’는 도저히 그냥 넘어 갈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공개적인 회의 자리에서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발언과 동조하는 분위기를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발언중이던 대의원을 잠시 앉게 하고는 진행과 관련된 발언을 했다.

각 농협의 총회는 농협 사업 및 안건에 대한 농민 대의원의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해 농협이 지역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다. 그만큼 총회를 준비하는 조합장과 이에 참석하는 대의원의 자세 또한 중요하다. ‘수박 겉 핥기’식 총회가 되지 않으려면 농민 대의원들의 더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비장했다고?

희미하지만 기억을 되살리면 ‘잠시만요, 000대의원님. 발언을 계속하시도록 할테니 잠시만 앉아주시고예’ 그러면서 ‘대의원님. 미국엔 농업협동조합이 없습니다. 호주도 없고, 캐나다도 없습니다. 왜 없는지는 아시지예? 그런 나라는 협동조합이 필요 없기 때문에 없습니다. 농업협동조합은 우리나라처럼 규모화 돼있지 못하고 올망졸망한 농가들이 모여서 만드는 거고, 협동조합 사업은 여럿이 어울려서 하다보면 이런 말도 있고, 저런 말도 나오고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겁니다. 회의를 하다보면 여러 의견이 있는 건데, 자기 의견과 조금 다르거나 발언이 조금 길다고 하여 발언중인 대의원에게 빨갱이 운운하는 것은 옳은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 옆에 대산농협 아시죠? 그 농협 본점에 들어가면, 엄청나게 큰 액자에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일인을 위하여’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아시지요? 그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아셔도 그 말이 어디서 나온 말인지는 잘 모르시죠? 그거 옛날에 소련 공산당들이 한 이야기입니다. 본래 협동조합, 농업협동조합 이런 거는 공산당 꺼라고 봐도 됩니다. 그러면 그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전부 공산당이고 빨갱이입니까? 공산당 이론이라도 여러 사람에게 득이 되면 하는 거고 좋은 거면 하는 거지. 우리 사회에서 회의 중에 다른 사람을 겨냥해서 공산당 운운하거나 빨갱이 운운하는 것은 아주 나쁘고, 문제가 있는 겁니다. 오늘 회의에서 가장 발언을 많이 한 사람은 상임이사와 접니다. 차라리 상임이사나 저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웃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발언중인 대의원을 겨냥해서 그러시면 안 됩니다. 말이 많다고...(중략)...필요한 이야기는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해야 합니다. 뭐 이런 말씀은 드리기 뭐 하지만 조합장인 저, 보수(급여) 받습니다. 보수 받으면 그 값어치 해야 합니다. 오늘 대의원님들도 일비(회의비용) 받습니다. 그런 대의원님이 준비해온 내용에 대해…’의 기조로 발언을 했다고 한다.

전해준 분의 이야기로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그 발언을 할 때, 매우 비장해 보였다고 한다. 조합장 하면서 내내 좋았던 것 중의 하나는 그날 이후 회의가 상당히 쉬워졌다는 것이다.

농민 5,000명만 뭉치거나, 아니면

농민의 기준이 애매하기도 해서 집계나 통계를 신뢰하기는 힘들지만 올망졸망하게 농업에 종사하는 젊은(?) 농민 5,000명만 뭉치면 나는 우리나라 협동조합을 바르게 세울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젊은 농민 5,000명이 뭉치는 것이 그리 어렵다고 보지 않고, 기형적인 우리나라의 농업협동조합 구조를 바르게 잡는 것이 그리 어렵다고 보지도 않는다.

‘올망졸망’한 힘들을 뭉쳐서 농업의 길을 굳혀 나가야한다고 본다. 나는 ‘농업협동조합을 개혁하자’는 말에 쉽게 동의하지 않으며, ‘우리나라 농업협동조합을 조금 더 우리 사회에 복무하게 하자’는 표현에 적극 동의한다. 우리나라의 농업협동조합은 상당히 기형적이기는 하지만 전체 사업의 내용과 방식에서 5% 정도만 손보면 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농협을 지역·품목별로 나누면 실질적으로 1,000개 정도의 농협이 존재한다고 분류할 수도 있다. 군지역의 품목·지역 농협들은 법인조직이 아니라 사업조직의 정리가 상당부분 필요하고, 이러한 내용이 인적인 구조조정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 당 농민 5명, 전국적으로 5,000명의 농민이 협동조합의 인식을 바르게 하면 농협은 빠르게 바로 설 수 있다고 본다.

농업부분의 개방화에 대한 문제로 농민이 어려워지는 것은 박근혜정부 시기나 문재인정부 시기라고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고, 정부가 바뀐다고 협동조합의 본래 역할이 크게 달라져야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50년간 우리 농업이 급격한 변화를 거쳐 왔고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우리 농업에 있어 당분간은 농업협동조합의 필요성은 더욱 중요해진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리 든든하게 좀 드시고

전북에 00농협이라는 곳이 있다. 2015년 3월 조합장 동시선거를 앞두고 00농협 경영을 맡아보고 싶었던지 지금은 고인이 되신 당시의 출마예정자 중 한 분이 선거 전에 지역 방문과 조언을 부탁하신 적이 있었다. 그분이 2015년 3월 선거에서 조합장에 당선되셨지만, 그분이 요청한 내용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열심히, 바르게 하겠다는 그분의 진심이 느껴져서 돕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말씀드렸던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며칠 지나서 그분이 제게 전화를 걸어 본인이 당선됐으니 사업을 도와 달라고 하셨다. ‘도울 거 있으면 돕겠습니다’라고 하고는 두 달이 지나지 않아서 그 농협의 조합장이 우리 지역으로 ‘노지에서 육묘하는 벼 육묘현황’을 직접 보러 오셨다. 선거를 돕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했는데 직접 사업을 보러 오시니 더 미안했다.

조합장직을 수행하시다가 고인이 되셨다는 이야기를 시간이 지나서 듣고는 더욱 미안했지만, 그 조합장님은 조합원에 이익이 되는 사업이라면 베끼는 역할도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곧 농협마다 총회가 열린다. 농협은 계획의 실천도 매우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계획을 수립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총회까지는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여러 농협들은 독창적이지는 않아도 인근의, 혹은 멀리 있는 농협의 내용이라도 좋은 것이라면 베껴서 농촌 현장에서 농협의 역할이 빛을 발하기를 바란다.

그런 사업들은 인근 농협에도 많고, 책에도 많다. 그리고 요즘은 스마트폰으로도 정보를 얻기가 쉽다. 농협에서는 법인의 대표이고 보수를 받는 조합장이 가장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일비를 받고 회의에 참석하는 대의원도 조합장이 일을 하도록 안을 내야하는 의무가 있다. 이번 11월 임시총회에는 대의원들이 식사를 미리 든든하게 드시고, 회의 중에 ‘밥 먹고 합시다’라고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김순재의 농협 빗장풀기’를 매월 1회 연재합니다.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을 역임했던 김 전 조합장이 들려주는, 늘 곁에 있으나 잘 알지 못했던 농협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 볼까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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