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밀수③ 「분선 밀수」를 아십니까

  • 입력 2017.11.10 16:34
  • 수정 2017.11.10 16:35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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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선(分船)’이라는 말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배를 나눈다?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도 않고 언어생활 일반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지만, 해상(선박) 밀수를 단속하는 세관의 조사관들 사이에서는 매우 익숙한 말이었다.

이상락 소설가

1960년대에서 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이 ‘분선 밀수’가 극성을 부렸는데, 그것은 화물선의 비창에 밀수품을 숨겨 들여오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밀수 물량이 대규모였다.

자, 그럼 당시 여수세관에서 밀수품 적발에 발군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이염휘 조사관의 얘기부터 들어보자.

“일본을 오가는 화물선이 항구로 돌아오면 당연히 세관직원들이 배에 올라서 구석구석 까다롭게 수색을 할 거 아닙니까?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먼 바다에서 일반 어선에다 밀수품을 슬쩍 넘겨주고, 여수항으로는 빈 배만 들어오는 거예요. 그럼 아무리 뒤져봤자 꽝이지 뭐.”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분선’이란 일본에서 싣고 오던 화물 중에서 밀수품만을 분리하여 도중에 다른 어선에다 넘기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니 세관 조사관으로서 느긋하게 항구에 앉아 배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다. 따라서 밀수품을 ‘분선하는’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일본에서 여수로 들어오는 선박의 경우 밀수품의 분선이 가장 빈번하게 이뤄지는 곳은 통영 앞바다의 욕지도다.

일본에서 돌아오는 선박은 도중에 위치보고를 하게 돼 있다. 지금 동경 몇 도, 북위 몇도 지점이다. 대마도 앞을 몇 시에 지났다…하는 식으로. 그런데 욕지도 앞에 이르는 시간을 어림해보니 한밤중이다. 밀수꾼들은 세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 밀수품의 분선 시간을 대체로 야간으로 약속한다.

감시정을 몰고 욕지도 근방에 미리 나가있던 조사관의 무전기가 요란하게 울린다. 문제의 밀수선이 인근해역에 나타나 정체모를 어선과 접선을 하고 있다는 보고다. 감시정을 몰고 현장으로 출동해 보니 다행히 어선으로의 밀수품 분선이 이뤄지기 직전이다.

“정지하라! 우리는 여수세관 조사관이다!”

들켰구나, 깨달은 밀수꾼들이 뱃머리를 돌려 도망친다. 감시정의 속도를 턱밑까지 올려 추격에 나선다. 말이 세관의 감시정이지, 일본을 오가는 대형 활선어선을 추격하기에는 금세 숨이 차버리는 조그만 통통배다. 그래도 이쪽은 권총으로 무장을 하고 있다.

탕탕! 공포탄을 발사한다. 도주하던 밀수선이 멈춰 선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아예 기관의 엔진을 모두 꺼버린다. 선박의 불도 다 꺼지고….

“어어? 저놈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뭔가 바다에 버리고 있어요!”

선원들이 밀수품을 순식간에 바다에 내던져버린 것이다. 적발되어서 형무소 신세지느니 차라리 손해를 감수하자, 이렇게 나온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선원들은, 한밤중 용왕님 나라에 뭔 일이 있었느냐, 는 투로 태연자약 시치미를 뗀다. 선원들을 모두 세관 감시정으로 옮겨 태운 다음, 화물선의 닻을 내린다. 바다 한가운데라 파도가 거칠지만, 그래도 그 지점에서 정박을 해야 한다.

“자, 이제 밀수품님들이 숨이 차서 올라오실 때까지 기다리자구!”

화장품 같이 무게가 나가는 물건이야 바닥으로 가라앉아버리지만, 옷이나 양산 따위를 꾸린 보따리는 곧 수면위로 뜨게 돼 있었다.

밀수증거품이 떠오르자 선원들의 태도가 달라진다. 각자가 사연도 다양하다. 아내가 몹쓸 병에 걸렸다, 보증을 잘 못 서서 빚더미에 올랐다….

적발된 밀수선은 감시정과 밧줄로 연결해서 여수항으로 예인하는데, 나중에 엄중하게 조서를 작성하더라도, 절대로 선원들을 거칠게 대해서는 안 된다. 밀수꾼과 조사관의 처지야 딴판으로 갈렸지만 변함없는 것은…그날 새벽에 그들 모두가 여수항구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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