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이 새 시대의 첫 번째 과제라고 하니까 그런 줄은 알겠지만, 살다 보면 무슨 일을 자세하게 알려주는 사람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선생이 없으니 대개는 짐작만 할 뿐이고 가끔씩 낭패를 보기도 하는데, 면사무소 들어가 되지도 않는 일 가지고 큰 소리치고 나오면서 “적폐야, 적폐” 하는 꼴을 보자면 거, 참, 맞장구 쳐주기도 애매하다. 크게 먹자고 보면 할 일은 지천이다. 전두환, 노태우 징역 다시 보내기를 먼저 해야 할지, 대대로 뿌리박은 친일파들까지 이참에 싹 소탕해야할지 가슴이 너무 벅차올라 도무지 선후와 장단이 가려지지 않는다. 일의 모양새가 안 잡히니 역시 겉만 번지르르하게 훑다 말겠구나 하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농민이라면 그 시작과 끝을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국민은행도 아니고, 우리은행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우리 조합의 이름을 빌려 쓰는 농협중앙회가 이명박 정권의 비자금 저수지로 거론되는가? 불법대출과 비상식적인 투자, 심지어 농협 해킹에 대한 의혹까지, 농협중앙회는 이명박 정권의 핫바지였음을 곳곳에서 증명하고 있다. 아직 의혹일 뿐이라고? 장사 하루 이틀 하나? 농사 한두 해 지어 보나? 딱 보면 저 구름에 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마서면 신포리에서는 동네 코흘리개들도 대번에 안다.
좀 뭣한 이야기지만, 너른 들판에서 품앗이하다가 어쩔 수 없어 묽은 똥 지려본 사람은 지금 이명박, 최원병 등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이다. 처음에야 조금 찝찝하고 ‘내가 똥 쌌나?’ 하겠지만 시간 조금만 지나면 모든 것이 내 살 같아지는 것이고 그때는 ‘내가 뭘 했는데?’하며 자기 자신마저 속아지고 만다. 홀딱 벗겨버리기 전에는 나 똥 쌌다고 말할 리 없다. 절대.
무엇을 얼마만큼 털어 먹고 발라 먹었는지는 그런 걸 잘 밝히는 사람이 잘 하겠지.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다스는 누구 것인가?”라고 여기저기서 물어대는 국민들이 “그런데, 농협은 누구 거지?”라고 물을 때 남 얘기 듣듯이 “참, 정곡을 찔렀소” 하고 박수만 치고 있기엔 농민으로서 입장이 좀 난처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1년 전의 거대한 물결을 되새김해 보면, 그게 사람이 한 일 같지가 않고, 역사가 사람을 소환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 때 우리는 구차하지 않게 제법 뭐라고 지껄일 준비는 하고 살아야 한다. 사발통문을 돌리고 전국의 국민은행 앞에 방이라도 붙여 보자고 할까? 아니면 전국농민조합원 궐기대회라도 준비하자고 할까? 국민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평소에 조합 간판이라도 닦아놔야 하려나?
일이 풀려가는 것에 따라서 사기꾼 대표 덕으로 희대의 봉이 될지, 시대의 영웅이 될지, 농민은 또다시 기로에 섰다. 어찌됐건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물을 때, 일단은 버벅거리지 않도록 농협이 누구의 것인지 우리가 우리에게 먼저 묻고 답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