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육묘업 등록, 대기업 진출의 교두보?

  • 입력 2017.11.03 15:09
  • 수정 2017.11.03 15:10
  • 기자명 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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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부에서 개헌 이야기가 나오면서 농민들 사이에서는 이번 개헌에서 반드시 농업에 대한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자는 바람이 불고 있다. ‘농민권리와 먹거리기본권 실현을 위한 농민헌법 운동본부’가 만들어졌다. 그동안 먹거리기본권은 많이 언급됐으나 농민권리에 대해서는 주로 소득보장이라는 측면만이 부각돼 왔다. 그러나 농민권리의 가장 기본은 ‘내가 무엇을 심을 것인가’에 관한 권리이다.

20여년 전 우루과이라운드에 대한 대안으로 포철이 유리온실사업에 뛰어들었다 실패한 후 한동안 잠잠했던 대기업의 농업진출 시도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계속 됐다. 동부한농, LG 그리고 그들의 합작품인 팜한농에 이르기까지 시도와 철회를 반복하고 있다. 공장화, 자동화한 시설을 이용한다는 스마트팜, 그러나 농산물 생산이라는 농업의 본연의 일에는 그다지 수지가 맞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다. 농산물 가격이 보장되지 않은 마당에 시설투자가 엄청난 유리온실이나 스마트팜이 가능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냈으니 다름 아닌 육묘업 등록제이다.

2002년 우리나라는 식물보호품종협약에 가입했다. 이 협약에 가입하면서 이제 보호품종으로 등록돼 독점이 인정된 모든 종자에 대해 그 사용료(로열티)를 내야 한다. 물론 10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2년부터 본격 시행됐고 2002년 당시 예상했던 사용료보다 훨씬 많은 사용료를 외국종자기업에게 내야 했다. 더욱이 씨앗을 충분히 뿌린 후에 싹이 트고 나면 솎아가면서 키울 것만 남기는 농사를 지어왔던 농민들에게 씨앗 하나마다 내야 하는 사용료는 엄청난 부담이다. 몬산토에 내야 하는 청양고추 사용료가 씨앗 하나당 60원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고였던 종묘업을 1973년 종묘관리법 제정을 통해 허가제로 바꾼 후 종자산업법이 제정되기까지 씨앗을 파는 것은 종자업으로 등록된 사업자만이 가능하게 됐다. 농민들은 자기가 거둔 씨앗을 자기 마음대로 처분하지도 못하고 파는 것 자체가 불법인 세상이 된 것이다. 해마다 씨앗을 사서 심어야 하는데 그 씨앗에 사용료가 붙어 몇 배에서 몇 십 배까지 씨앗 값이 올랐으니 농민들 나름대로 길을 모색해야 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모종을 키워 파는 것 자체를 업으로 하는 농민들도 많이 늘어났다. 농민들 중 누군가가 모종을 키워 파는 것은 농민들에게는 서로에게 이익 아닌 이익이 된다. 모종을 키우는 농민은 모종 값을 받아서 이익이고 농사를 짓는 농민은 비싼 씨앗을 밭에다 뿌렸을 때 생길지도 모르는 부담을 덜 수 있어 이익이다. 소득보장이 안 되는 마당에 씨앗 값이라도 절약해야 하는 농민에게서 나온, 솎아 먹는 재미조차도 포기해야 하는 고육지책인 셈이다.

그러나 이 고육지책이었던 시장이 2000년대 들어 업체가 15년 사이 6배 이상 증가하고 최근 5년 사이 시장 규모도 30% 이상 증가했다는 보고서가 나오면서 육묘업 등록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2016년에는 법 개정안이 나왔고 이제 2달 후부터 시행이다. 겉으로는 체계적으로 관리해서 좋은 씨앗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미 시설이나 규모에 대한 세세한 기준이 나왔다. 소규모로 모종을 키워왔던 농민들은 이 제도가 시행되면 다 불법이 될 운명에 처한 셈이다.

씨앗 사용료에 대한 부담을 걱정하는 농민들에게 나름 유용했던 모종 키워주는 농민, 그 자리에 과학적, 체계적 관리라는 스마트팜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1960년대 경제성장정책,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거치면서 규모화한 농업을 키워왔던 정책이 이미 망한 지금, 여전히 그 규모화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모종에까지 대기업이 뛰어들 게 하려고 하나?

옛말 그른 것 하나 없다. 아홉 섬 가진 자가 한 섬 가진 자의 것까지 빼앗으려 하는 이 탐욕을 누가 막을 것인가. 무엇을 심을 것인가에 관한 권리는 마땅히 농민의 것이어야 한다. 농민권리가 헌법에 보장돼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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