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부부가 꼭 같이 농사를 지어야 돼요?

  • 입력 2017.11.03 14:54
  • 수정 2017.11.03 14:55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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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질 전, 부부가 꼭 같이 농사를 지어야 돼요?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여자후배가 있었습니다. 아니, 어… 그런데 같이 지어야 되지 라며 흐릿하게 답을 했습니다. 뒤늦게 농사를 시작한 젊은 부부인데 이미 물어보는 말 속에 같이 농사를 짓자니 여러모로 힘들다는 뜻이 들어있고, 나 또한 같이 농사를 안 지어도 되지만 그럴 경우 살림이 엉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답변을 한 것입니다.

구점숙(경남 남해)

부부가 함께 짓는 농사와 어느 한 쪽만이 짓는 농사가 현재의 수준에서 보자면야 비교할 것이 못 됩니다. 농업 선진국처럼 일정정도의 소득이 보장되는 조건에서 전업화, 규모화, 기계화된 농사의 경우는 몰라도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십중팔구 규모나 농사의 질에서 차이가 날 것입니다.

농사일을 부부가 따로 한다는게 말이나 되냐구요? 그러게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렇게 하나 봅니다. 예전같으면 자신이 처해진 상황에 따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함께 하던 농사일을, 이제는 자신의 기호나 전망, 적성에 따른 직업선택을 하는 시대이다보니 응당 근본적인 질문이 따르는 것이지요. 여성들에게 직업으로서의 농업은 얼마만큼 매력이 있을까요? 특히 부부가 한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에 말입니다.

부부가 공동으로 농업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생기는 문제 하나, 농사일을 같이 했으니 가사노동도 같이 나누자는 아내의 완강한 주장과 동네 아주머니들과 형수님들은 일도 잘 하고 손맛도 끝내주는데 왜 당신만 유별나게 구냐며 부딪히는 부분이 있지요.

또 있습니다. 정교하거나 큰 농기계를 주로 다루는 쪽이 주가 되고 다른 쪽은 보조적 지위로 인식되어서는 부부가 주종아닌 주종적 관계가 됩니다. 지시하려 하고 (뜻한 바가 아닌 데도)잔소리가 거듭되고 상대를 통제하려 들게 되니 여성농민이 직업인으로서의 긍지를 갖기란 쉽지않습니다.

또 지역사회에서는 농업관련 직무교육이나 회합이 남성위주여서 직업인으로서 젊은 여성의 참여가 처음부터 어려움이 따르지요. 농촌의 질서라는 것이 도시의 능력우선과 달리 연장자 우선이 절대적인 분위기여서 날 때부터 배포가 남달라서 남의 이목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통뼈급 여성쯤은 돼야 발언권을 가질 수있습니다.

여성농민을 직업군으로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정책수립과 예산배치, 전담부서 마련은 여성농민계의 오랜 숙원사업입니다. 이러한 대책없이 농업에 종사하는 여성농민의 문제를 개별로 보는 한, 부부가 농사를 꼭 같이 지어야 하냐는 후배의 물음이 생겨날 수밖에요. 이는 다른 새로운 여성농민의 농업진출을 가로막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같이 농사를 지어라, 그렇잖으면 살림이 안 된다, 수고스럽더라도 농사만큼은 함께 짓는 것이 답이라고 말하기에는 개별 여성농민이 감수해야 할 몫이 너무 많다보니, 차마 시원스러운 답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주인이 섬기면 개가 밖에서도 대접을 받는다지요? 세상이 여성농민을 대접해준다면야 가정내에서나 마을에서 지위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주체적 입장을 지닌 여성농민과 동등하게 같이 일을 할 때면 농작업 지시가 의논으로, 무급봉사로 당연시 여기던 농사일을 진심 감사하는 입장으로 여기며 가장 수준높은 파트너와 농사일을 하는 즐거움을 갖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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