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가을에 바람

  • 입력 2017.10.29 08:35
  • 수정 2017.10.29 08:37
  • 기자명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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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희(제주시 구좌읍)

선선한 바람이 불어 가을이 깊어 가는 것을 알리고, 밭에 콩들은 잎을 날려 보내고, 해가 날 때 거둬 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두 번 뿌리고서야 싹을 틔운 당근이며 무는 한 겨울이 와도 버틸 만큼 푸른 잎들과 뿌리를 키워냈다. 궂은 날씨와 벌레들과 싸워서 어렵게 이겨낸 잘된 농사이다. 풍년이면 다가오는 겨울, 제값 받기는 틀렸다는 것을 모두 알지만 잘 자라주는 놈들이 고마운 것은 어쩔 수 없는 농부들의 마음이리라.

몇 년의 기다림이었던가. 마음고생하며 키워낸 아이들의 손에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플릇이 들려지고 보는 사람들이 더 마음 졸이게 되는 연주가 시작됐다. 제주의 가을밤이 뜨거워지는 것은 목청껏 부르는 노랫소리, 오케스트라 연주, 보는 이의 손뼉소리와 함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자리를 있게 한 사람들의 열정을 보아왔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집 아이들을 살피고 돌보면서도 좋은 소리 못 듣고 마음고생, 돈 고생 하는 것을 봐온 나로서는 그들에게서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이 잘 커 갈 거라 믿게 된다.

제주도청 맞은편 길에 천막이 세워졌다. 10월 22일 오늘까지 13일째 굶고 있는 사람도 있다. 성산일출봉이 있는 성산읍의 신공항 건설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사람들, “농사를 짓고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이 밥은 먹으면서 싸워야지” 해도 끝까지 ‘단식’ 한다고 하니 젊은 목숨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기만 하다.

아무도 나서지 않아 지켜보기만 하면 도지사 맘대로 “다들 찬성한다”고 “신공항 빨리하자!” 할 거고 “땅값이야 받겠지만 잘못한 사람처럼 쫓겨나게 되는 것은 눈에 훤한 일이다”라며 혼자 할 수 있는 게 몸으로 때우는 일 밖에 없다고 추운 겨울도 버티고 이젠 굶기까지… 이 사람들 없으면 제주에 희망도 없을 것이다.

농부들은 그들이 돌본 농사가 잘 되기만 하면 그것으로도 행복하다. 아이들은 악기를 다루고 서로 모여 노래하면서 꿈을 꾸게 될 게다. 그리고 그 꿈을 지켜주려고 애쓴 사람들을 기억할 것이다. 자기 삶터를 지켜내는 일, 뺏기지 말아야 한다고 싸워야 한다고 누구나 말한다. 그래야 세상은 살만하게 바뀔 거라고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어 주는 일이다.

뭐 좀 도와줄 거 없나, 잘 나가는 사람이든 그리 못한 사람이든, 더 춥기 전에 찾아봐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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