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36] 애정과 성찰

  • 입력 2017.10.28 15:20
  • 수정 2017.10.28 15:23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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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양양친환경농업대학 현지실습과 견학차 양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유기농 사과 농장을 방문했다. 양양읍에서도 설악산 쪽으로 한참을 올라가 비포장도로를 통과하니 산 중턱에 농가가 나타났다. 산골이 깊어 놀랐다. 주인장과 부인이 반갑게 맞아주었고 몇몇 분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우선 사과부터 한두 개씩 나눠 주어 맛있게 먹고는 농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농장은 온통 사과나무와 주변의 숲이 뒤엉켜 있는 산골이었다. 친환경 농업을 해 보려고 공부하고 있는 40여명 농부들의 탄성이 쏟아졌다.

나는 사과나무와 잎의 상태, 병충해 발생 여부, 과수원 흙 등을 유심히 관찰했다. 사과나무는 10월 중순임에도 수세가 좋아보였고 꽃눈도 잘 형성돼 있었으며, 흙은 거의 부엽토 수준의 검은색이었다. 아직 열려 있는 만생종 사과는 하얀 석회가루를 뒤집어쓰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2년 째 미니사과를 키우고 있는 초보 농부로서는 부럽기만 했다. 그리고 이 넓은 과수원을 내외분이 거의 다 돌본다는 설명을 듣고는 또 한 번 놀랐다.

이들 부부는 10여년 전 공직생활을 마치고는 유기농 사과 농사를 시작했다. 농사는 실패의 연속이었고, 8년이 지난 재작년에서야 판매할만한 물건을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생산량도 많았고 품질도 우수하여 대형 백화점에서 전량 가져갔다고 한다. 8년 만에 수입도 괜찮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지난해와 금년에는 재작년만큼 농사가 잘 되지는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이들은 철저하게 자연에 순응하는 삶과 생태순환농사법을 실행하고 있었다. 사과 밭에서 나오는 떨어진 사과는 물과 섞어 과수원의 흙을 한줌 넣고 6개월 정도 발효시킨 다음 액비로 활용했다. 밭에서 나오는 풀은 물론 나뭇가지 등도 모두 발효시켜 밭으로 환원해 주는 방식이었다. 부족한 미량원소는 희석한 바닷물과 생선을 발효시킨 액을 사용하기도 했다. 밭에서 나온 것은 100% 밭으로 되돌려 준다는 철학이 인상적이었다. 방제는 철저하게 친환경 자재만을 사용하여 만들어 사용했다.

한 겨울을 제외하고는 일 년 내내 바쁜 나날을 노동으로 보낸 그들이 안쓰러우면서도 존경스러웠다. 두 분의 손은 나무껍질같이 딱딱하고 거칠었으며 모양도 일그러져 있었다. 저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토록 오랜 세월을 유기농을 하기 위해 몸이 으스러지도록 고생했을까. 60대 후반부의 연세이면서도 아직은 젊어 얼마든지 노동할 수 있다고 하시는 자신감이 부러웠다.

단순히 돈만을 벌기 위해서였을까. 이 모든 것은 두 분의 노동과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성찰에서 비롯되었음을, 짧은 대화로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하루였다. 나는 이들의 발뒤꿈치만큼이라도 흉내 낼 수 있을까. 부끄러워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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