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공간의 재구성

  • 입력 2017.10.27 16:03
  • 수정 2017.10.27 16:05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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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 현대화 사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진 탓에 요즘은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붉은 벽돌에 기와를 얹은 마을회관이 보기에도 참 좋습니다. 

구점숙(경남 남해)

스쳐 지날 때면 덩그러니 서있기만 하는 마을회관인 듯해도 마을 대소사를 결정할 때나 대동회 할 때, 또는 마을분들이 돌아가실 때면 회관 안마당에서 노제를 지내며 마을에서 한평생 살다간 망자의 혼을 달래는 등 마을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요긴한 공공의 장소입니다.

보기에도 좋고 활용도가 높은 우리 마을회관이 다 좋은데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의외로 부엌이 좁다는 것입니다. 음식을 나누려고 부엌바닥에 두세 명만 자리를 잡아도 통로가 없습니다. 그러니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의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거기다가 싱크대에서 물이라도 사용할 량이면 물이 튀어서 옆 사람들이 옷을 버리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새로 지은 건물을 허물 수도 없거니와 누대에 걸쳐 사용할 수 있을만치 야무진 통 콘크리트 벽체인지라 쉽사리 손을 댈 수도 없으니 이를 어찌해야 할까요?

길을 가다가 새 집을 짓는 장면을 마주치게 되면 한 번 들어가 보고픈 충동을 느끼곤 합니다. 집주인의 의도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궁금해서 말이지요. 이웃 마을에 엉성하게 아는 분이 집을 짓는데 예의 그 호기심이 발동해서 빈손으로 불쑥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느 집의 구조와 달랐습니다.

특히 거실이 있을 법한 자리에 떡하니 부엌과 식탁이 있었습니다. 어찌된 까닭이냐고 바로 질문이 들어갔습니다. 했더니 그분은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인 부엌이 너무 어두운 게 싫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먹는 것이 제일 큰 즐거움인데 그 또한 한쪽 구석에 자리하는 것이 싫다고 했습니다. 맙소사, 아니 너무 멋진 거 아니냐고 최고의 찬사를 드리며 돌아오는 발걸음이 어찌나 경쾌하던지요.

집을 설계할 때도 민주적인 구성이 있지요. 주 사용자가 사용한 공간이라면 그 당사자의 요구가 반영되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하물며 마을회관은 더 하겠지요. 모두가 활용하는 공간인 만큼 그 비중을 섬세하게 검토해서 재구성 하노라면 누구든 큰 불편 없이 잘 사용할 수 있겠지요. 어쨌거나 마을 건의사항이 행정에 전달되었다하니 어쩌면 다소나마 구조변경이 이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부녀회원분들 중에는 그냥 불편한 대로 살자라고 하는 분도 계십니다. 벽체를 헐지 않고 싱크대 방향을 바꾸더라도 그다지 넓어질 것 같지 않고 또 멀쩡한 싱크대를 뜯어버리고 새로 설치한다는 것이 아까우니까요. 그 또한 여성들의 고운 성정입니다.

애당초 잘못된 설계라지만 우리가 불편을 감수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시는 것이지요. 삶의 마디마디 어려움을 참아냄으로써 일구어 온 그 미덕이 이제 몸에 배인 까닭입니다. 암만요. 그 마음에 한 표 드립니다. 그래도 조금의 개선여지가 있다면 다소 변화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지 아니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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