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짝퉁’ 로컬푸드

  • 입력 2017.10.22 11:54
  • 수정 2017.10.22 11:58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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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나주 로컬푸드’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에 위치한 나주시로컬푸드직매장 한 쪽 벽면에 새겨진 문구를 증명하듯 지난 16일 매장 곳곳에선 농민과 소비자가 이날 갖고 온 농산물을 두고 의견을 나누는 장면을 종종 마주칠 수 있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6일 오전 9시. 영업 준비가 한창인 나주시로컬푸드직매장 앞은 트럭과 승용차에서 당일 새벽 작업해온 배추, 무, 고추 등을 내리는 농민들로 북적였다. 당일 새벽 수확한 작물을 직접 포장하고 가격 스티커를 붙이고 매대에 진열하는 손놀림이 능숙하다.

노지 1,000평에서 무, 배추, 상추, 옥수수, 아로니아 등 다양한 작목을 생산하는 정금애(51)씨는 당일 새벽 작업한 무와 배추를 내러 왔다. 정씨는 “공판장에 내는 것보다 가격이 훨씬 좋고 안정적이다. 예전엔 가격을 직접 정해서 팔 방법이 장에 나가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면 다 팔릴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하는데 로컬푸드직매장이 생기니 우리는 진열만 하고 가면 된다. 농사일이나 개인적인 일을 볼 시간이 생긴 것이다”며 “하루 일당 정도를 벌려면 품목을 다섯 가지 정도로 골고루 내는 것이 좋다. 한 품목이 팔리는 양에 한계가 있으니까 대농에게는 힘든 곳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계열(53)씨는 하우스 1,800평과 약간의 노지에서 농사짓는 품목의 절반을 로컬푸드 매장에 내고 있다. “오이 2개에 1,000원이다. 지금 시세로는 40kg 한 박스에 2만원 정도를 받는데 직매장에 출하하면 2만5,000원 정도를 받는 셈이 된다. 공판장 가격이 더 좋을 때도 있지만 시세가 좋지 않을 때도 여기서는 가격을 꾸준하게 보장받을 수 있어서 안정적인 것이 좋다”며 두 개씩 포장해온 오이에 가격 스티커를 붙였다.

나주시로컬푸드지원센터 직원들은 1톤 탑차를 몰고 매일같이 농산물 순회수집에 나선다. 직매장에서 거리가 멀거나 고령이고 이동수단이 없는 농민의 출하를 돕기 위함이다. 반남면과 다시면에 밀집한 고령농들은 한여름 채소 값이 오를 때에도 꾸준히 로컬푸드 직매장에 출하하며 자칫 비어버릴 수 있는 매대를 책임진다.

직원들은 또 직접 농가를 찾아다니며 직매장에 없거나 부족한 작목의 농사를 권하기도 하고 새로운 품목을 출하할 농가를 섭외하기도 한다. 이것을 기획생산이라 지칭한다. 이를 통해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종류도 늘릴 수 있고 농가와 관계를 맺으며 로컬푸드 운동 참여를 유도한다. 이런 활동들이 나주시로컬푸드센터가 직매장에서 하루 300~400가지의 품목을 팔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다.

국내 로컬푸드는 2013년 정부가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2015년「지역농산물 이용촉진 등 농산물 직거래 활성화에 관한 법률(직거래법)」을 제정하면서 급속히 확산됐다. 정부는 직매장 설치 지원사업을 전개하며 직매장 수 늘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로컬푸드를 유통사업으로 이해한 결과다. 로컬푸드는 먹거리의 안전성 확보와 환경적 부담 경감, 나아가 생산자와 소비자의 사회적 거리를 줄이려는 고민에서 태동한 운동이다. 공산품을 팔지 않고 지역에서 생산하지 않은 농산물을 억지로 판매하지 않는 불편함을 소비자와 생산자가 굳이 감내해야하는 것이 특징이다.

로컬푸드를 유통대안으로 취급하니 ‘예산을 들여 판매장을 늘렸으므로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달성해야한다’는 실적 압박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 압박은 농협으로 하여금 로컬푸드의 취지를 망각하고 현실과 타협하게 만들었다. 공산품까지 구비해 둔 ‘짝퉁 로컬푸드’문제는 차치하고 다른 지역 농산물을 떼다 파는 농협의 일부 로컬푸드직매장이 짝퉁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근본적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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