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수입바나나와 농협의 장삿속

  • 입력 2017.10.21 16:32
  • 수정 2017.10.21 16:34
  • 기자명 이대종(전북 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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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종(전북 고창)

하나로마트에 가면 “우리 농산물을 믿고 살 수 있다”, “신선한 수입과일이 있다”.

어떤 것이 농협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것이며, 소비자의 발길을 유도하는 방안이 될까? 이번에야말로 하나로마트 수입농산물 판매 행위를 뿌리 뽑겠다는 농민들과, 이에 질세라 보란 듯이 바나나 판매에 열을 올리는 농협이 충돌하고 있다.

조합장 등 마트 관계자를 만나 어째 그렇게 바나나 못 팔아서 안달이냐 다그치면 “다문화 가정을 위한 거다”, “이 없는 노인들이 찾는다”, “촌 양반들 야유회 갈 때 많이 사간다”, “학교급식 간식메뉴다”, “마트는 구색을 갖춰야 한다” 등등 준비된 답변이 줄줄이 흘러나온다. 참 연구도 많이 했다. 그 연구정신이면 무엇을 못할까 싶다.

그런데 이 문제는 도시를 낀, 상대적으로 대형화된, 장사 깨나 되는 매장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조합원들 생필품 등 간단한 새참거리나 조달하는 농촌지역 매장에서는 바나나를 본 적이 없다. 혹여 그런 매장에서 바나나를 찾으면 갖은 핑계를 대가며 그런 건 안판다고 손사래 칠 것이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농협의 천박한 장삿속에 있다.

고창 복분자 명성이 드높을 때 관내 모든 농협이 앞장서서 복분자 수매에 열을 올렸다. 소비가 시들해지자 판로가 없다고 가격을 후려치고 수매를 중단했다. 이걸로 끝이다. 농협의 장삿속이라는 것이 이렇게 얄팍한 백짓장과 같다. 바나나 판매 문제도 똑같다. 장사가 되겠다 싶으니 가져다 놓는 것 말고 그 무슨 큰 이유가 있겠나?

하지만 이로 인해 빚어지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정체성 어쩌고 하는 도덕의 문제만도 아니다. 스스로의 존립 기반을 갉아먹는 행위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고추, 땅콩 가공공장을 운영하면서 중국산 고춧가루, 볶음땅콩을 파는 어리석은 행위는 근절돼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국산은 비싸서 잘 안 팔린다고 우는 소리 할 일이 아니다. 바나나 판매도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고창에서 서로 낯붉히는 싸움단계를 거쳐 “바나나를 판매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냈다. 간담회를 통해 약속한 바를 헌신짝처럼 내던진 일부 조합장들이 자초한 일이다. 그날 이후 “바나나 사려거든 다른 마트를 찾으시라”는 안내판이 내걸렸다.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아쉽다. “우리 농산물, 국산 과일을 애용해 달라”는 말은 왜 못하는가?

믿고 찾을 수 있는 우리 농산물, 품격 있는 우수한 국산 가공식품으로 소비자를 매료시킬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가? 전국 각지 농협에서 쏟아내는 제품만으로도 매대를 채우고도 남을 터인데 그깟 바나나 못 팔아서 애태울 일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털어놓고 말해서 재래시장, 일반마트에서 들깨가루, 고춧가루, 참기름, 들기름 등 국산 가공식품은 찾기도 어렵거니와 그 품질을 믿을 수도 없다.

농협은 수입농산물 판매 근절에 나선 농민들을 고깝게 생각하거나, 소나기 피한다는 생각으로 모면하려 해서도 안 된다. 차제에 체질 개선에 나설 일이다. ‘신토불이’ 정신은 다 어디다 갖다 바쳤는가?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농민과 더불어 스스로가 살 길이고, 소비자인 국민으로부터 사랑받을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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