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들판내 성희롱

  • 입력 2017.10.19 21:15
  • 수정 2017.10.19 21:17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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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가을비와 가을비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인 덕에 월동작물 파종도 얼추 끝나 갑니다. 수확기의 잦은 비가 밉지만 그래도 작년처럼의 폭우는 아니어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을 예쁘게 해봅니다. 날씨랑 농사는 한 몸처럼 움직이는 지라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탓할 수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공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깨닫습니다. 

구점숙(경남 남해)

마늘파종이 한창이던 때, 일 해주러 오신 분이 하도 열심히 일하고 저녁 늦도록 고생을 하길래 고맙고 미안해서 상냥한 표정으로 무엇을 해드리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천만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술을 좋아하는데  술 중에는 입술이 최고라고 천연덕스럽게 농을 합니다. 순간 얼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나의 모욕감과는 상관없이 함께 있던 남성들도 그 분위기를 죽 이어갑니다. 이걸 어째야 하나? 이 무슨 말 같지 않은 말인가? 뭘  해보자는 수작도 아닐 테고,  나를 우습게 아나? 기분 좋자고 하는 말인데 그냥 넘어갈까? 아니면 정확히 직면시킬까? 짧은 순간 고민이 많았습니다.

특별히 나에게 관심이 있어서도 아닐 것입니다. 만약 관심이라면 내가 좋아할 말을 했겠지요. 농사짓느라 고생이 많다, 힘들지 않느냐며 진정어린 말을 건넸겠지요. 그런데 그런 호감어린 말은 쏘옥 빼고 자기의 기분과 자신의 취향에 젖어서는 상대가 그런 말을 듣고서 모욕감을 느끼는지, 기분이 어떨 지는 안중에도 없이 성적인 농담을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들판 성희롱입니다.

직장내 성희롱은 뉴스거리나 되지만 농촌의 성희롱은 일상과 섞여서는 기준도 없이 친밀감, 또는 호감으로 인식되기 일쑤입니다. 듣는 사람은 전혀 친밀하게 느끼지도 않을 뿐더러  모욕감이 터져나오는데 상대는 화색이 넘칩니다. 

농촌지역의 성희롱은 너무도 일상이 되어있어서 문제시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술자리에서는 예사로 술따르기를 강요하며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다'라던지, 악수를 하면서도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긁기도 하고 예사로 어깨에 손을 걸치는 등 사례가 차고 넘칩니다.

성문제의 출발은 불평등입니다. 뉴스를 봐도 알겠지만 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남녀의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 수록 자주 문제가 생겨납니다. 인도에서 추악한 성폭행이 일어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는 이유라하지요. 도시에서는 이런 문제가 사회적 관심거리가 되고 심지어는 처벌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농촌지역은 빈번하게 성희롱이 일어납니다.

어떤 어려움이나 모욕감도 참아내는 것이 슬기롭고 지혜로운 여성상이라는 강제된 여성의 역할에서 솔직한 자기 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힘있는 남성들의 공간에서 여성성은 놀잇감에 불과하겠지요.

그런데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것일 뿐더러 세상이 바뀌고 있잖습니까? 일상과 희롱이 구분되지 않는 조건에서라면 지도층부터 바껴야 되겠지요. 성희롱과 아닌 것을 어찌 구분하냐구요? 간단합니다.

딸이나 며느리 한테 할 수 없는 성적인 농담이나 행위라고 보면 되겠지요.  성적이지 않고도 사회에서 허용되고 권장할만한 건강한 유머는 지천에 깔렸으니, 성적인 농담을 빼면 너무 건조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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