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농업과 여성

  • 입력 2017.10.15 11:44
  • 수정 2017.10.15 12:54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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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보다 더 빛나는 벼 이삭의 찰랑한 노란 물결이 온 들녘을 일렁이게 하지만 그 아름다움도 잠시, 차디찬 뉴스가 가슴을 파고든다. “한-미 FTA 재개정 합의”라…. 한숨이 나온다. 하….

김정열(경북 상주)

농민, 노동자, 시민들의 촛불투쟁으로 들어선 문재인정부가, 소득 복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사람이 돌아오는 농산어촌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칼보다 더 날카로운 카드를 농민들에게 내민다. 헛웃음이 나온다. 참….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토대 위에 농업의 희생이 있었음은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다. 자동차 수출을 위해 농민들이 통곡을 삼켜야 했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2012년 발효된 한-미 FTA 역시 농업의 희생을 담보로 이뤄진 협상이었다. 그 협상이 농민들을 죽음으로 내 몬다고 얼마나 반대했던가? 그러나 정부는 농민들에게 침묵과 합의를 강요했다.

예상대로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은 71억8,200만 달러인 반면에 한국산 농축산물 수출액은 겨우 7억 1,800만 달러로 나타났다(2016년). 이렇게 농업무역수지 적자가 심각한데도 농업의 더 큰 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개정 협상을 정부가 받아들인다니 과연 농민은 대한민국 정부의 보호를 받는 국민이 맞는가?

명절을 끝내고 모인 우리 여성농민 회원들이 “이번 추석 연휴가 제일 힘들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열흘이나 되는 긴 연휴가 누구에게는 즐거움과 휴식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에게는 끊임없는 노동을 해야만 했던 가장 힘든 명절이었다.

대식구들 시중과 손님들 접대 그리고 차례상. 쉴 새 없는 밥상과 술상은 그냥 차려지지 않는다. 대충대충 차려지지 않는다. 그것을 위해서는 허리를 구부려 하루 종일 다듬고 씻고 볶고 지져야만 한다. 그 육체적 힘겨움도 힘겨움이지만 그 노동이 당연한 것이고, 대가가 없는 것이고 누구에게만 강요된 노동이라면 견디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명절 이후에 이혼율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왜 일까? 일하기 싫어하는 여성들 탓일까? 남편이나 시댁에 불만이 있는 며느리 탓일까? 명절에 가장 극대화 되는 가사노동과 여성들의 불평등한 처지에 관한 문제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어떡해야 할까? 또 지금까지 내려오는 전통과 관습으로 인내와 희생을 이야기 할 것인가?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개인적인 가족관계의 문제로, 남성과 여성, 노인과 젊은 사람의 문제로, 별난 몇 몇 여성과 며느리들의 문제제기로 치부할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집단적으로 찾자. 그것이 평등한 사회, 민주적인 사회, 윤리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길이다.

이번 명절을 겪으면서 농업에 가해지는 침묵과 소외와 희생이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순종과 강요와 억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농민들의 처절한 노동이 있기에 생명을 살리는 먹을거리가 생산되지만 국가는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치열한 여성들의 노동이 있기에 하루 세끼 밥상이 차려지지만 사회는 그 노동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자유무역 국가정책으로 농민들이 죽어 나가지만 국가는 농민들 보고 참으라고 한다. 여성들이 불평등한 관계에 대해 말하려고 하지만 참고 조용하게 살자고 한다. 또 때로는 희생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포장해서 침묵하게 만들기도 한다. 농업이나 여성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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