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완행열차④ 용산역·귀성객·대나무 장대

  • 입력 2017.10.15 11:42
  • 수정 2017.10.15 12:22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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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 이후 대도시에 본격적인 산업화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농촌의 젊은이들이 ‘물동이 호밋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줄줄이 떠났다.

이상락 소설가

이 무작정 상경 붐은 경부선보다는 상대적으로 산업기반이 취약한 호남선 인근지방에서 특히 거세게 일었는데, 이들이 한꺼번에 귀성길에 나서는 추석이나 설 명절 때가 되면 철도당국은 한바탕 몸살을 앓아야 했다.

1971년 초, 어느덧 30년 이력이 쌓인 김형배는 그해 설날을 앞둔 즈음에 용산역장으로 부임하였다. 부임한 다음 날 아침, 역무원들에게 일장 연설부터 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교통부 장관, 내무부 장관, 철도청장 명의로 귀성객 수송대책에 만전을 기하라는 공문이 연일 내려오고 있어요. 1960년의 서울역 참사를 거울삼아서 우리 역에서는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일어나지 않도록 각자 맡은 업무를 철저히 숙지해서…”

1960년 1월 26일 밤, 설날을 이틀 앞두고 서울역에는 평시보다 세 배나 많은 4천여 명의 귀성인파가 몰려들어 역사 안팎이 북새통이었다. “목포행 완행열차, 5분 후에 출발하겠습니다.”

방송과 함께 함께 개찰이 시작되었다. 완행열차는 지정석이 따로 없던 시절이라, 사람들이 좌석을 차지하기 위해 승강장을 향해 한꺼번에 계단 아래로 내달았다. 인파 속에서 누군가 비명을 질렀고 사람들이 우르르 그 위를 덮쳤다. 서른한 명이 압사하였다. 희생자들은 설빔을 곱게 차려 입은 노인이나 여성, 어린아이 등이 대부분이었다.

무질서가 낳은 참사라 해서 이후부터는 경찰이 귀성인파를 마치 훈련병 다루듯 통제했다. 김형배가 역장을 맡았던 70년대 초에는 ‘목포행 완행열차’의 출발역이 용산역이 되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예매작전’이야. 기존의 예매창구 이외에 광장에다 열다섯 개 정도의 ‘예매박스’를 따로 설치했거든. 지금이야 귀성차표를 수개월 전부터 예매를 하지만 그땐 다들 먹고 살기 바빠서 출발 당일이나 하루 이틀 전에 몰려들었거든.”

김형배 노인이 ‘예매박스’라고 지칭한 그 부스에 차표 판매 직원이 볼펜과 차표와 똥오줌을 받아낼 변통을 들고 들어가면 바깥에서 자물쇠를 채워버린다. 그 직원은 업무가 끝날 때까지 그 상자 안에서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 밥도 매표창구를 통해서 밖에서 넣어준다. 굳이 자물쇠를 채운 것은, 그 구하기 힘든 차표를 두고 외부인과의 부당한 거래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요즘 그랬다면 인권유린이라며 들고 일어날 일이지만 당시의 역무원들은 남녀 모두 군소리 없이 춥고 답답한 매표 부스에 온종일 감금된 채로 묵묵히 차표를 팔았다.

역장인 김형배가 점검해야 할 사항이 또 있었다.

“오늘 상행열차 편으로 대나무를 실어 보내기로 했는데, 수령했는지 확인해봐!”

며칠 전에 용산역장 이름으로 담양에다 대나무 장대를 특별 주문해 두었다. 귀성객 수송하는 데에 웬 대나무 장대냐고? 필요했다. 열차가 출발하는 당일에.

용산역 광장은 밤 9시 50분에 출발하는 목포행 완행열차를 타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개찰구를 통해 쏟아져나간다면 1960년의 서울역 참사가 일어나지 말란 법 없다.

“모두 제자리 앉아! 거기 앉지 못 해! 오리걸음으로 삼보 앞으로!”

역무원들이 유격훈련장의 교관처럼 호루라기를 불며 반말로 호령을 하고, 기다란 장대의 양끝을 나눠 잡은 역무원 두 사람이 삐죽삐죽 몸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머리를 장대로 툭툭 치며 눌러 앉힌다.

“자, 맨 앞줄 일어나서 개찰구로!”

반죽에서 칼국수 썰어내듯 장대로 한 줄을 잘라내면 승강장으로의 질주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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