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유통, 농협이 책임져야

  • 입력 2017.10.15 11:33
  • 수정 2017.10.15 11:38
  • 기자명 김순재 전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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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먹고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농사를 지으며 벌어먹고 사는 일은 내가 하고 있어서 느끼지만 진짜 힘이 드는 일이다. 벌이의 액수도 중요하지만 내일 아침 도매시장 가격을 모르는 게 우리 농업의 현실이라서 진짜 힘든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 첫 하우스를 지으며 하우스 농사에 오랫동안 종사하고 있었던 선배에게 “형님, 제가 지금 하우스를 짓고 있는데예~ 작물을 뭘 택하면 되겠습니꺼?” 하고 물어보니 선배가 “순재야 낼 아침 장금(도매시장 가격)만 알아도 내가 농사짓고 있겠나? 지금 우리는 그냥 잘 할 수 있는 농사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나는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며, 내일 아침 시세도 알지 못한 채 농사를 지어 도매시장으로 내보내는 우리 농민들의 처지를 오랫동안 참기 힘들었다. ‘내일 아침 시세도 모르는 우리 농민’이라는 한탄도 자주 했었다.

조합장을 하기 전, 농사만 짓는 농민일 때는 정부가 나서서 어떤 종류의 씨앗이 어느 정도 팔렸는지, 미리 농민들의 선호도를 조사하고 선호도에 따른 과거의 가격 흐름표를 제시하면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농민들이 그 내용을 많이 공유해서 농사를 지으면 가격의 지나친 폭등락도 막아 ‘농민-소비자에게 유익해지지 않겠나?’하는 생각들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농산물의 폭등락이 누군가에게는 유리한 일인지 정부는 그 일을 소홀히 하는 듯이 보였다. 내용은 늘 빈약해 보였고, 농민들은 정부 발표와 거꾸로 가는 것이 ‘살 길이다’라고 했다.

농협 조합장이 되었을 때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도 농산물 판매였다. 조합장 때, 지역의 수도작-벼농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벼농사는 매우 중요하지만 가격에 있어서는 시골농협 조합장 한 명이 조정할 수 있는 것은 40kg 기준으로 몇 천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고, 전체적으로는 그게 지역 농민들의 생활수준을 바꾸는데 기여할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였기에 생산 과정 지원에 집중했다.

아주 싼 가격에 육묘대행, 병충해 공동방제를 통해서 고령의 농민들은 물꼬나 보면 되는 조건을 성공적으로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쌀값은 어쩌지 못했지만 농민들의 노동량은 현저히 줄였다는 생각이다. 지역에서 소소하게 생산되는 농산물도 농민들이 생산만 하면 농협이 비용을 들여 마을단위로 수집해서 판매장으로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내심 사업의 방향을 정했지만 지역의 주력 농산물인 단감 판매는 대단히 큰 문제였다.

당시 농협은 단감 일부를 수출물량으로 사들였고, 일부는 농협이 수탁해 공동선별을 했지만 그 물량이 미미했다. 수출물량의 단감은 정해진 수출 단가 이하의 가격에 사들여서 작업비용을 더해 수출업자에게 넘기면 되는 일이었으니 일은 하되 땅 짚고 헤엄치는 사업이었다.

수탁 물량은 공동선별 후 시장의 시세에 따라 추후 농가에 정산하면 되는 업무였으니 가격이 나쁘면 욕은 듣지만 농협으로서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사업이었다. 그 이외의 95%가 넘는 단감 물량들은 농협을 통해 위탁 판매를 하거나 농민들이 상인에게 넘기는 수준의 판매방식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내용의 농산물 판매방식에서 생산자인 농민에게 이익을 보장하고 소비자의 부담을 줄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시골농협의 조합장 한 명이 처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정부가 나서야하고 농협중앙회 조직 70% 이상을 손봐서 복무하도록 구조를 바꿔야하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지금 정부는 농업부분을 사실상 방기하고 농협중앙회는 중앙회 중심으로 조직을 더 강화시키고 있으며 생산자들의 대표조직인 지역농협들은 더욱 빈약해지고 있다.

농산물 유통과 관련해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 모두가 시장 지배력을 높여야 농가에겐 적절한 생산비 보장을, 소비자에겐 적절한 농산물값을 제공할 수 있다. 사진은 한 지역농협의 산지유통센터 모습. 한승호 기자

큰 자본이 협동조합을 왜 만들어

나라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많은 것이 서울 중심이 되었다. 우리지역도 그러하지만 대다수의 농촌지역에서 생산하는 주력 농산물은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권 소비지가 좌지우지 하고 있다.

그러니 농촌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들은 도시의 동향을 살피고, 영세한 우리 농가들은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대도시에 직접 판매시스템을 구축하기 힘이 드니 농협을 통한 판매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왜 농협이 판매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지의 이유는 명확하다. 농협은 공공성을 가진 조직이고, 그 역할이 법으로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 농민들은 수확기를 앞두고 촉각이 곤두서 있다. 우리 지역의 주력 농산물은 단감과 벼이다. 1990년을 기점으로 지역농협들에 미곡종합처리장이 생기고 나서는 벼 판매 방식은 대부분 그 형식이 정해져 있다.

농민들은 수확한 벼에서 양식 분량과 공공비축미 분량을 남기고 대부분을 지역농협 미곡종합처리장으로 넘긴다. 그렇게 우리 지역농협에서 사들이는 자체 산물벼 수매량은 50억에 육박한 적도 있었지만 비슷한 수량임에도 불구하고 벼는 매입가격의 하락으로 이제는 40억에 미치지도 못한다.

벼와 달리 단감은 가격에 따른 차이도 있지만 연간 300억 내외에 달하니 지역농협은 사활을 걸고 단감 판매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금액이 300억 내외라고 하더라도 농협의 역할이 미미하다면 사실 농협과는 상관없는 사업일 수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농협이 나서면 가을철에 농협 직원들 얼굴 맞대기가 무서울 정도의 고난도 사업이다.

과거에는 단감의 경우, 농민들이 생산하고, 수확하여 선별하고, 포장했다. 생산하고 수확 후 가선별까지만 농민들의 몫으로 남기고 선별, 포장, 판매 업무의 상당부분을 농협이 맡아가는 과정을 구축하는 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도 과거에는 어찌했건 농협이 더욱 나서야 하는 이유는 협동조합이기에 수집-운송, 위탁판매의 수준을 현저히 뛰어 넘어서 조합원들이 일 년의 겨울-봄부터 가지치기를 시작으로, 거름주기, 병해충방제, 솎기, 병해충방제, 제초작업, 병해충방제, 수확에 이르는 노동 가치를 제대로 챙겨주기 위한 노력들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농민들이 수확기 20일 내외의 여러 어려움으로 수확을 포기하고 헐값에 밭떼기로 판매하는 숱한 경우를 봐왔다. 그리고 영농비용보다 훨씬 높게 정해진 유통비용들을 자주 봐왔다. 영농과정에서 발생한 비용과 유통과정의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다. 농협은 생산비와 유통비를 낮춰 소비자에게 복무할 의무와 농가의 수취가격을 올려야하는 의무를 함께 수행해야하는 막중한 역할이 있다.

농산물 유통구조 손봐야

우리 농산물은 생산비에 대비해서 유통비용이 너무 높다.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명백히 유통비용은 손봐야한다. 유통구조를 손보기 위해서는 우리 농업에서 농산물 유통의 1차적인 걸림돌인 농협중앙회의 유통조직을 소멸 시키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농협중앙회의 농산물 유통은 효율성은 낮고 자본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로 지역농협과 소비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실질적인 내용은 농산물 유통을 더욱 경화시키는 구조에 불과하다. 마치 트랙터의 로터리 날이 너무 촘촘해 흙을 부수기는 하지만 제대로 고르게 하지는 못하는 것과 같은 지경이다.

농협중앙회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농산물 유통에 지역농협들이 줄서기를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농협이 전체 농산물 시장에서 생산자 농민을 대표해 시장을 넓히기는 매우 어렵다. 농산물 유통시장에서 농협중앙회의 유통력 확대는 동맥경화 환자에게 필요에 따라 달리기를 강요하지만 뛸 수가 없는 상황인 것과 같다.

농협중앙회가 중앙회 중심으로 물류기지를 세우고, 지역농협에 줄서기를 사실상 강요하여 수수료를 받는 것은 매우 모순된 사업방식이다. 돌파구를 열어가는 몇몇 지역-품목농협의 모범이 아니라 농협 전체가 협동조합으로서 시장 지배력을 넓혀야 하는데, 농협중앙회는 그런 생각자체가 없는 것으로 보이고 기존 시장에서 농협내의 비율을 올리는 수준에 머물면서 그 내용들은 늘 한계에 부딪혀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인근에 있는 도시농협들 상당수는 지역농협에 농산물을 바로 발주한다. 생산지 농협에서 소비지로 바로 가는 시스템인데, 지금 농협중앙회의 농산물 물류 시스템은 한 단계를 더 거치는 수준으로 구성돼 있다.

‘생산자 농민-생산지 농협에서의 소비지 직거래’라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농협중앙회가 역할을 한다면 지역농협 연합물류시스템 구축지원까지가 그 역할이어야 한다. 협동조합끼리의 사업에서 생산지 다음은 바로 소비지여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수수료는 물류비, 전산비용을 제외하고는 없어야 한다. 생산지 농협의 2차적 위치에서 지원해야하는 조직에 불과해야 함에도 끊임없이 농산물 유통에서 지역농협을 지배하고자 하는 속성을 바꾸지 못하는 중앙회가 안타깝기도 하다.

서울을 포함해서 각 지역에 있는 농협중앙회의 농산물도매시장은 전부 지역 생산지 농협에 운영권 넘겨야 하고, 대도시에 포진하고 있는 농협중앙회 소속의 판매장들도 그 지역농협에 넘겨야한다. 그러하지 않고 농협중앙회가 틀어쥐고 있으면 지금 이 수준을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이 갖는 한계로 인해 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고, 그 내용을 협동조합이 인식하고 구조를 슬림화 시키는 방식으로 틀을 잡지 않으면 농협은 결코 ‘농산물 유통’ 사업을 활성화 시킬 수가 없다.

지역-품목농협의 (상호)금융사업과 농산물 유통, 자재사업의 최대 걸림돌은 농협중앙회다. 지역-품목농협의 한계를 확대시켜 전체 사업에서 동맥경화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심하게 보면 농협중앙회는 구호만 번창하고 조합원의 실속 챙겨주기는 없는 것 같다. 필요에 따라 협동조합을 만들었는데 협동조합의 이중적인 구조가 농민과 소비자에게 궁극적으로 복무하지 못한다면 손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구조를 고치는 것에 정부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다. 궁극적으로 농협중앙회 조직의 70% 정도는 조속히 구조조정을 해야 농업도 살고 농민도 살 수 있다고 본다. 정부의 투자나 예산은 이미 올해나 2018년 계획에서 손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러면 농업부분은 빠르게 내부를 손봐야한다. 특히 문재인정부의 농업부분 핵심적인 인사운용을 보면 사실상 ‘농업은 이대로 간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부끄러운 한계

추석을 앞둔 어느 해의 일이다. 농민들의 신뢰와 협조,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특정시기의 지역 농산물을 수탁처리한 일이 있었다. 이후에는 상당히 안정적으로 동읍농협에서 자리 잡게 된 사업이 있다. 농가들은 가선별만 한 상태에서 농협에 수탁했고, 농산물의 선별·포장·판매 같은 일체의 내용을 농협이 맡은 것이었다.

사업 시행당시 기준으로 과거 3년 치를 조회하여 그 농산물의 출하실적이 있는 농가이거나 농협에 출하하지는 않았지만 관내에서 그 품종의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를 농협이 일일이 확인해 사업 대상으로 정하고 농가의 협조를 받았다. 농가에 협조를 구하기를 ‘삶아 먹던지, 버리던지 농협에 맡길 수 있겠느냐?’고 했고 농가들이 알아서 하라고 동의한 사업이었다.

농가들이 가선별한 30리터 플라스틱 컨테이너를 기준으로 2,000개 가량의 농산물을 수취하여 선별하는 과정에서 약 200개 분량을 폐기처분하고 1,800개 정도만 판매했다. 농산물의 품위를 고르게 하기는 힘들지만 최대한 품위를 고르게 해 출하했다.

그리고 농가에 정산을 했는데 지역의 여러 농민이 전화를 걸어와서는 ‘농협의 정산이 잘못됐다’고 했다. 잠시 후에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고 이야기 하고는 자료를 살펴보고 농가와 다시 통화를 하면서 물어 보았다. ‘무엇이 잘못 되었느냐?’고 물어보니, ‘농협이(직원이) 대금지급 과정에서 실수하여 돈이 너무 많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농가에 ‘정산은 정확했고, 수수료를 너무 많이 떼어서 죄송하다’고 했더니 농가들이 ‘진짜 그 가격이 나왔느냐?’고 놀라는 일이 있었다. 실제로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모두 유익해지는 방식의 사업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했다.

농협이 사업을 틀어쥐고 있으려고 하면 안 된다. 시장주의 사회에서 협동조합은 시장권력을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줘야지 생산성이 낮은 협동조합이 사업을 틀어쥐고 있거나 내부 영역에서 다투고 있으면 반드시 한계에 막혀서 개량이 힘들어진다. 우리 농업에서 늘 그랬듯이 농협중앙회의 방향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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