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끝나고 갈 곳, 우리가 만들어 줄게”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부론 청소년공부방’
교사들,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이들만 보고 버텨
국가적 예산 지원·지역 주민 관심 절실

  • 입력 2017.10.14 19:03
  • 수정 2017.10.15 11:32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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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부론 청소년공부방에서 홍효석 교사가 부론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의 문제풀이를 돕고 있다.

정규 학교마저 사라져가는 농촌 현실에서 아이들의 방과 후의 학습과 복지는 꿈같은 이야기다. 그래서 어떤 곳에선 희생에 가까운 헌신으로 사회가 할 일을 대신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주민자치센터. 부론초등학교 인근에 위치한 이곳엔 하교 뒤 갈 곳 없는 시골 아이들의 보금자리가 된 ‘부론 청소년공부방’이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책을 읽고, 수학 문제를 풀고, 친구들과 어울려 논다. 일하느라 바쁜 부모님이 챙겨줄 수 없는 저녁식사까지 제공받는다. 원주시 농촌 지역 9개면 중 이러한 시설을 갖춘 곳은 부론면이 유일하다.

부론 청소년공부방은 지난 2006년 손곡리 주민 이지원씨가 구해다 만든 컨테이너 박스에서 시작한 이래로 12년째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치고 있다. 이후 주민들이 모은 기금으로 버텨나가며 면소재지로 자리를 옮겨 더 많은 아이들을 수용하고 교육환경을 개선시켜왔다. 도시에서 교육자로 일하던 주민들이 선생님으로 자원했다. 운영위원들의 노력으로 3년 전부터는 교육청의 ‘저녁 돌봄교실’ 사업비와 부론면이 지원받는 한강수계 주민지원 사업비 일부도 가져오고 있다. 주민자치센터로 옮기면서 30여명의 아이들을 여유롭게 수용할 수 있는 공간도 확보했다. 현재 운영위원인 이씨는 수업이 끝나면 방치되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공부방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부방은 여전히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선생님은 4명으로 늘었지만 이들에게 인건비로 지원되는 금액은 한강수계 주민지원 사업비에서 나오는 2,000만원이 전부다. 그나마도 올해부터는 1,500만원으로 줄면서 한명의 선생님을 떠나보내야 했다. 지역 주민이기도 한 교사들은 월 70만원도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며 사실상 동네 아이들을 가르쳐야한다는 사명감만으로 교육을 이어나가고 있다.

인력과 예산 지원 모두 시급한 실정이지만 오히려 예산이 깎인 상황. 주민자치센터로 옮긴 뒤엔 전기·난방·통신요금 등의 관리비도 월 50만원에 달하고 있지만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교사들은 교육 현장의 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 일부 주민들의 여론이 답답하기만 하다.

“지역에서는 ‘애들 적당히 보고 있다가 밥만 먹이고 보내면 되지 본인들이 뭘 더 하려고 하느냐’고 그래요. 선생님이 왜 더 필요하냐는 거죠. 하지만 우리가 봤을 땐 공부를 봐주지 않으면 힘든 아이들이 많이 있어요. 그 친구들의 학습을 끌어올려주고 싶은데 한사람 당 열 명이 넘게 봐주는 건 굉장히 힘들죠.”

수학학원강사 경력 15년의 홍효석 교사는 아이들 교육뿐만 아니라 저녁 식단 및 식사 준비, 청소, 각종 행정 업무까지 도맡아야하는 환경이 힘에 부친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교육을 소홀히 하기에는 보고 있기 안타까운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이곳 아이들 70%가 다문화 가정이다.

“대부분이 조손 가정이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에요. 부모님 일 나가 없고 서로 집들은 뚝뚝 떨어져 있으니 동네 친구도 없고 언어적으로도 부족하고. 심리적인 안정, 그리고 공부의 기초가 절실해요. 처음에는 학원식 수업을 하다가 지금은 미술교육, 책 읽기 그리고 수학의 기초를 다지는 방향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불평이 터져 나왔지만 지금은 1년에 50권의 책을 읽는 아이도 등장했다. 책을 읽고 나면 미술교사의 지도 아래 읽은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 새긴다. 홍 교사는 한참 설명을 하다 저녁 준비를 하러 자리를 비워야했다. 우미선 교사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부론초 위탁 저녁 돌봄사업으로 교육청에서 아이들 식비는 나와요. 그런데 그게 25명분이라, 저희가 저학년-고학년 간 양 조절을 해서 조금 인원을 늘린다고 해도 몇 명 더 받는 게 한계죠.”

부론초등학교 재학생은 모두 약 60여명이지만 공부방의 혜택은 절반밖에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우 교사는 교사들이 단순한 고용인이 아닌 운영주체의 일부가 돼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보고 있는 저희가 제일 잘 알고 있어요. 선생님들은 지금 아이들만 보고 이 일을 버텨내고 있는데… 괜한 노파심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나가면 얘들은 어떻게 될까. 다른 선생님이 과연 (이 열악한 근무환경을 보고) 여기에 오려고 할까요? 중요한 시기를 놓치고 자라버리겠죠.”

교육 현장 출신의 주민들이 농촌 마을에 모여 스스로 교사로 나선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까운데, 그 결과로 목격한 것은 ‘컨테이너에 있을 때보다는, 떡볶이로 간식을 사가면 아이들이 달려들어 국물까지 다 먹던 그 시절보다는 그래도 낫다’로 위안 삼는 모습이었다. 아무도 하라고 하지 않은 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그들에게 정당한 보수보다도 더 시급한 것은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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