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합시다. 제발

김순재(경남 창원시)

  • 입력 2008.05.06 10:04
  • 기자명 김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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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 소재지 쪽 큰길가에 부동산 사무소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지역의 땅값이 엄청나게 올랐다. 한 평에 3만원, 5만원하던 논들이 7만원 10만원 하더니 어느새 20만원 가량 하는 모양이다. 일찍 논을 판 노인네 몇은 마음의 병을 얻어 한동안 바깥출입도 못할 정도였다. 텔레비전 연속극에서나 보았던 일이 우리 동네에서도 일어났다. 그 부동산 광풍이 우리 동네를 휩쓸어 갈 때 속수무책으로 멍하게 지켜보았다. 뉴스에서는 연일 고위층의 모가지가 부동산에 걸려 날아가고 있는데도 우리지역의 부동산 광풍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물론 나는 팔 부동산이 없으므로 자유롭지만 무거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동네 옆에 큰 길이 생길 때, 나는 우리 동네 가까이로 길이 오는 것에 반대하였다. 마을 주민들은 ‘큰길이 생겨야 마을의 땅들이 가치가 있을것’이라고 이야기하였고 나는 ‘대개의 우리는 땅 살돈도 없고 팔 땅도 거의 없으므로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넓은 길들이 생기고 마을의 구멍가게들은 망했다. 도시와 농촌이 통합되어지고 땅값은 오르기 시작했다. 빚에 쪼들린 농민들은 논을 팔고 그 논의 소작인으로 전락하였고, 다시는 농사를 지어서 그 땅을 살수 없을 정도로 땅값은 폭등하였다. 부동산 광풍에서 자유로웠던 우리 주변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자연스럽게 농사일을 천대하였다. 농업은 삶의 희망이 아니고 벗어나지 못하는 멍에에 불과한 매우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보였다. 남의 경작지를 예고 없이 가져가는 경우도 많아졌고 올 봄에 이 논의 못자리를 해야 할 지 말아야할지도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 주변에 일상화된 일이 되어버린 비이성적인 행위를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고 시비거리조차 되지도 않았다.

명백히 헌법과 법률에 금지되어 있음에도 2백마지기를 경작하는 소작인이 생겨나고, 부동산중개인의 눈치를 살피고 논주인의 눈치를 살피는 주변 농민이 늘어났다. 부재지주의 부당한 서류요구에 앞장서서 날인을 받아주기에 혈안이 되고 그런 행위는 당연시 되었다.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그런 곳에는 규정을 지키고자하는 행정이 없었고, 인간의 얼굴을 한 양식도 없었다. 그냥 돈만 되면 되는 천박한 우리의 실천성 없는 의식만 남아 있었다. 어쩌자는 것인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중에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규제가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암묵적인 거래가 활발히 진행되어졌고 나는 왜 토지거래허가지역이 되어졌는지 무슨 효과가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추정해 보건데 공부상(명부상)이 아닌 실소유는 사실상 7할 정도의 농경지가 외지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어졌다. 그 뒤 끝에 국제곡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쇠고기 시장은 사실상 전면 개방되어졌다. 논을 팔지 않고 소유하고 있는 농민은 몇 억대의 거지가 되고 자기의 소유 논이 없는 농민은 희망을 가지기 힘든 농민이 되었다. 참으로 내가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우리 지역에서 진행되어졌다. 나는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땅을 팔겠느냐?’의 전화를 수도 없이 받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많은 사람은 땅을 팔았고, 소수는 땅을 팔지 않았다. 나는 몇 십 만원짜리 땅을 산 사람들이 그 땅을 어쩌는지 계속 지켜볼 생각이다.

위의 내용은 2003년에서부터 2008년에 이르는 동안 경남 창원의 동읍, 대산면, 북면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파종을 준비하는 올해 봄에 나도 파종 볍씨를 줄였다. 내가 경작하는 논 한 필지가 날아 갈 모양이다. 나는 비굴해지기 싫어서 그 논의 경작을 포기한다. 그리고 하던 일을 꿋꿋하게 하겠다. 법대로 되는 날을 만들어 가다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는가? 법 말이다. 법.

김순재(경남 창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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