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추석맞이 우리 동네 노래자랑

  • 입력 2017.10.01 17:11
  • 수정 2017.10.01 17:13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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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바짝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추석이란 게 별 것도 아니면서 또 별 것인 듯합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추석 전에 해치워야 한다거나 추석 뒤에 하면 된다고 설정을 하게 되니 추석이 기준이 되는 셈이지요.

구점숙(경남 남해)

사실 명절음식을 준비하고 대청소를 하는 등 손님을 치르는 일이나, 그동안 미뤄두던 집안일을 들추는 부담으로 치자면 추석이 없는 것도 괜찮을 상 싶어요. 그렇지만 생활상의 부담을 이유로 이런 것 저런 것 다 뿌리치면 우리 삶이 무엇으로 채워지겠어요? 그러니 다가오는 명절은 그 명절의 의미를 잘 살리는 것이 가장 값진 일이겠지요.

오래 전부터 명절 때마다 마음속으로 꿈꾸던 일이 하나 있습니다. 아직도 엄두를 잘 못 내고 있는 일이지만, 뭐 거창한 것도 아닙니다. 뭐냐고요? 추석맞이 우리 마을 노래자랑입니다. 추석 전날 밤에 각 가정에서 준비한 음식들을 조금씩 마을회관으로 가져와 이웃들과 나누며 한 집마다 그 가정을 대표해서 노래나 장기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아마 70~80년대쯤에는 마을마다 더러 하던 일일 것입니다.

이제 농촌이 노령화되고 일에 쫓겨서는 이런 일을 추진할 주체도 없거니와 집에 온 자식들에게 농사일을 의존하느라 즐길 틈이 없지 않던가요? 그렇더라도 추석 전날 밤은 모두가 어우러지는 시간을 꼭 만들고 싶어요. 설날은 추워서도 안 되거니와 그믐제를 지내는 풍습으로 말미암아 불가능하니까요.

보기에는 멀쩡한 도시의 자식들도 실은 그 삶이 얼마나 팍팍하겠어요? 빠듯한 살림인데 세상은 끝없는 욕망을 부추기고, 그 대열에 끼어들지 못하면 낙오자 취급하는 인정 없는 세상에서 따뜻하게 위로하고 지지해줄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겠어요?

고향은 성공한 사람들의 자랑터 뿐만 아니라 실패한 사람들에게도 유년의 기억을 그대로 보여주며 다시 초심을 갖고 새로운 힘을 갖도록 위무할 수도 있지요. 다른 말은 하지 말고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니겠냐며 고생한다는 한 마디만 하도록 해요. 긴 말은 잔소리가 될 테니까요. 일이 바빠 부모님 일만 돕다가 바쁘게 도시로 가지 않도록, 그 바쁜 와중에 어찌 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눌 따뜻한 자리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음식 나누기며 청소를 여성들에게만 맡기지는 마세요. 같이 즐겨야지요. 남녀노소가 힘을 보태서 같이 준비하고 같이 즐겨요. 각자 집에서 고추 몇 근, 참깨 몇 되, 햅쌀 한 말을 부상으로 내놓아도 좋겠어요. 동네에서 연세가 제일 많은 남녀 어른들을 심사위원으로 모시면 좋겠어요. 앰프 대여비는 출향민 중에서 넉넉한 살림을 가진 분들께 후원을 받으면 좋겠지요. 마을에서는 참가한 모든 분들께 마을의 의미가 담긴 소정의 상품을 준비해야겠지요. 아직은 그 정도의 일은 꾸밀 수 있을 법합니다.

고향마을이 살아야 농촌이 살고 우리사회가 건강해지겠지요. 누가 뭐라 해도 먹는 것이 제일 중하니까요. 그러니 아직도 농촌마을 지키고 있는 분들의 소중함도 느끼고, 도시에서의 고달픔도 읽는 알뜰한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마을마다 귀신이 나온다는 모퉁이가 있어 지금도 그 곁을 지날라 치면 조금은 겁이 나는 그 긴장감도 실은 돈을 주고도 가질 수 없는 값진 상상력입니다. 여유가 있는 집에서나 키우던 단감나무 아래서 침만 삼키던 일이며 마을 안에서 연정을 품던 처녀총각들의 알뜰한 사연을 담고 있는 고향마을이 이제 더는 빛을 내지 못 하고서 쇠락해가는 모습이 서글프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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