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사짓고 살 만 합니까?

  • 입력 2017.10.01 12:48
  • 수정 2017.10.01 12:49
  • 기자명 이영수(경북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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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경북 영천)

올해로 귀농 10년차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제는 농장에 견학도 오고 가끔씩 강의를 나가기도 한다. 10년 전과 달리 귀농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져 우리 면에만 내 또래의 젊은 귀농인들이 많아져 지난해부터 운동모임도 같이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눈다.

강의를 나가든 뒷풀이를 하든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농사짓고 살 만 합니까?’라는 물음이다.

비단 귀농에 관심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귀농한 우리 부부를 걱정하는 지인들도 한번쯤은 꼭 물어보는 말이 ‘농사짓고 살 만 하나’라는 것이었다. 그저 지나가는 말로 무심한 듯 물어보는 척 했지만 걱정과 안쓰러움을 감추고 몇 번을 주저하다 용기내서 물어 보는 것 같았다.

아무튼 ‘농사짓고 살 만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 부부는 ‘농사짓고 살 만 합니다. 농사 참 매력적입니다’라고 답한다.

사실 우리 부부는 둘 다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귀농할 때까지 농사라고는 몰랐다. 아내는 지리산 산골 골짜기에서 태어났지만 자기 말로는 부잣집 셋째 딸이라 흙 한 번 만져보지 않았다 하고, 나는 공부한다는 핑계로 농사일에는 젬병이었다.

물론 개화기에 된서리가 내려 꽃이 다 말라죽고 수확 직전 태풍으로 낙과되고 각종 자연재해로 눈물 흘릴 때도 있다. 또 고된 노동의 강도로 육신이 힘들 때도 있고 해마다 농협에서 빌린 돈 갚기가 버겁지만 그 모든 것을 상쇄할 만큼 농사는 매력적이다. 돌아보면 우리 부부가 10여년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두려움과 집안 반대를 이기고 농사지으러 내려온 건 정말 잘한 것 같다.

강의를 듣는 사람이든 지인이든 농사짓고 살 만하다는 답을 내놓으면 나보다도 물어본 사람들이 더 안도하고 좋아한다.

그러면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농사짓는 거 참 매력적이지만 전제가 있습니다. 어떻게든 농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귀촌인들이야 물 맑고 경치 좋은 곳에서 자리 잡고 살면 되지만, 업으로서 농업을 선택한 귀농인들에게 농업과 농촌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비단 귀농인들뿐만 아니라 평생을 농사꾼으로 살아온 이들에게조차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남는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현실이다.

부단한 노력 끝에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는 프로농사꾼이 되어도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이상기후가 갈수록 빈번해지고, 어느 정도 안정적 기반을 다진 농민들도 나락값이 폭락하면서 그나마 돈 되는 몇몇 품종들로 쏠림현상이 생기면서 불안하기 짝이 없다.

농업을 단순히 농산물 생산 산업으로만 인식하는 후진국에나 어울릴법한 천박한 농업관을 가진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농업정책을 결정하고, 농관련 업자들만 배불리고 농민들은 연쇄도산으로 내모는 농업보조금 정책이 수십 년째 변하지 않는 상황을 보면 암담하다.

상황이 어떻든 부디 귀농하는 농사후배님들도, 또 하늘 같은 농사선배님들도 밀려오는 수입농산물 파고에도 꿋꿋이 살아남고, 농업의 가치를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서운하기도 하고 천박한 농업정책에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이 악물고 어떻게든 살아남았으면 한다.

살아남기 위해 농사도 열심히 짓고 필요하면 사람들을 만나 설득도 하고 또 거리에 나가 데모도 해야 하고 정치도 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농사짓고 살 만 합니다’라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농민들이 자꾸 늘어났으면 좋겠다.

끝까지 농촌에서 살아남아 농사짓고 살 만하다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농민이 되기 위해 우리 부부는 오늘도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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