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완행열차② 일제 강점기, 군산역

  • 입력 2017.09.24 12:30
  • 수정 2017.09.24 12:3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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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호남선 철도역만 외우는 줄 알어? 경부선도 훤하다고. 해볼까? 부산-부산진-초량-구포-물금-원동-삼랑진…알았으니까 그만 하라고? 허허허…. 역무원으로 일하자면 역 이름만 외워서는 안 돼. 거리도 알아야 하거든. 예를 들어서 군산에서 목포는 195 킬로미터, 광주는 154, 대구는 270, 부산은 395, 영등포는 276, 서울은 279, 인천은 301….”

이상락 소설가

열일곱의 어린 나이에 군산역 역무원으로 출발하여 정년퇴임하기까지 평생 ‘철도밥’을 먹고 살아왔다는 김형배 노인은, 내가 만났을 때 일흔여덟 살이나 됐는데도 전국의 철도역 이름은 물론, 군산에서 각역까지의 거리를 장판지에 들기름 흐르듯 거침없이 외워 젖혔다. 다른 건 몰라도 역간 거리를 아직 술술 외는 걸 보면, 초년병 시절 일본인 역장 밑에서 그가 얼마나 혹독한 교육을 받았는지를 짐작케 한다.

하지만 당시 군산역에 근무했던 역무원이라면, 호남선뿐만이 아니라 전국 각 철도역까지의 거리를 당연히 알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거기에 임률(賃率)을 곱해서 사람이나 화물의 운임을 산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일제 강점기) 군산역은 그저 그런 시골역이 아니었어. 이리역과 함께 호남평야에서 징발한 양곡을 군산항으로 운송하는 거점이었거든. 그래서 역장도 특별히 고등관(高等官)으로 배치를 한 것이여. 군산항도 규모가 대단했지. 5천 톤급 배가 너덧 척씩 정박해 있었으니까.”

그렇게 수집한 양곡은 군산항을 통해서 일본 내지(內地)나 혹은 일제가 전쟁을 수행 중인 중국 등 다른 지역으로 나누어 운송됐다. 그러니까 당시 군산은 우리로서는 농산물 피탈(被奪)의, 일제로서는 병참보급의 전진기지였던 셈이다. 그 시기 군산역에서 화물을 운송할 때 찍었던 스탬프의 문구가 「쌀의 군산」이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상징한다.

“하도 많이 실어 날라서 군산역에서 항구 쪽으로 가는 철길이, 화물 운송 중에 흘린 쌀 때문에 눈 쌓인 것처럼 하얬다니까.”

그렇게 빼앗기고 정작 조선 민중은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서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있었으니.

신입 역무원 김형배가 처음 배운 것은 개찰업무였다. 승객의 기차표에 가위로 구멍을 내는 일이었다. 선임 역무원들은 찰칵찰칵 순식간에 해치우는데 이 요령부득의 신참은 가위로 구멍을 내고나서 그 부스러기를 일일이 손으로 떼 내느라 낑낑대다가, 밀려든 승객들이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지청구를 원 없이 들었단다.

그런데, 차표에 구멍은 왜 뚫었던 것일까?

“정상적으로 개찰 절차를 거친 승객이라는 증표지요. 또한 차표의 일정한 지점에 가위로 구멍을 뚫기 때문에, 그 사람이 우리 역에서 탄 승객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도 있고요. 그러면 구멍이 안 뚫린 차표를 소지하고 있는 승객은 어떻게 되느냐…”

객실 안에서 검표를 할 때 구멍이 없는 차표는 원칙적으로 무효처리 해야 되지만, 역무원의 실수로 그냥 통과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굳이 여비를 따로 징수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승객은 범죄 혐의자가 아닌지 일단 의심을 받게 돼 있다. 더러 개찰구 쪽에 수배자를 찾기 위해 사복형사가 출동할 수도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은 범인이라면 다른 경로로 불법 승차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배운 업무는 기차가 도착했을 때 승강장 쪽으로 나가서 방송을 하는 것이다. 열차에 방송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역무원이 메가폰을 들고서 객실을 향해서 안내를 해야 했다.

“여그는 군산역이어유. 깜박 잠든 사람 있으면 후딱후딱 내리셔유!”

첫날 김형배가 했던 그 사투리 안내 방송은 군산역에서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김형배도 시나브로 어엿한 역무원이 되어갔다. 그리고 해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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