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바쁠 때는 같이 바쁩시다

  • 입력 2017.09.24 12:29
  • 수정 2017.09.24 12:32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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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과 파종을 동시에 하는 들녘이 분주하기만 합니다. 마을안길을 달리는 경운기들도 자동차로 치면 5단 기어 쯤 될 만큼 딴에는 초고속입니다. 일철의 고속 경운기 엔진소리는 그 옛날 추수하는 들판의 풍물선동대 마냥 신명과 기운을 북돋워 줍니다.

구점숙(경남 남해)

누군가의 바쁘고 잰 움직임은 상대방에게조차 힘을 불어 넣어 주니까요. 일이 처지게 되면 두 배로 힘들다고 남들이 일을 할 때 같이 서둘러야 한다고 시어머니께서 힘주어 말씀하시는 까닭도 이 때문이겠지요. 곁의 사람이 주는 조금의 긴장감이 힘의 또 다른 원천이 된다는 것을 어른들은 익히 아시나봐요.

이 바쁠 때 농협이나 행정 사무실에 들어서면, 그 고요한 정적에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와 펜글씨 소리가 사각사각 들려 같은 곳의 다른 세상에 빈정이 상하기도 하지요. 농민들은 바빠 죽겠는데 농협직원들이 저리도 한가하니 세상이 이리 불공평해서야 되겠냐고 세상에서 농협직원들이 제일 나쁜 듯이 말합니다. 눈에 빤히 보이니까요. 사실 대부분의 사회악은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 치밀히 구성되는데 말이지요.

그런 우리 농협직원들이 요즘 무지하게 바쁩니다. 새로이 마늘기계식재 사업을 추진하다보니 씨마늘 분류 작업과 종자테이핑, 실제 논밭에의 트랙터 작업에도 상당수의 직원들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본점에서 제일 큰 책상에서 띄엄띄엄 결재를 하는 전무님도 씨마늘을 고르느라 한참을 서있고 경제사업 담당직원은 아예 물류센터에 살다시피 합니다.

몇 십 킬로그램이나 되는 마늘상자를 들고 내리며 어떻게 하면 작업이 원활하게 될 지를 궁리하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일전의 회의장에서 서운했던 모습이 일순 사라졌고 음료수나 간식이라도 안 챙겨간 손이 부끄러웠습니다.

유토피아라고 들어보셨어요?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고들 하는데 500년도 전에 영국의 소설에 나오는 얘기랍니다. 그 이상사회라는 것이 별다른 것이 아니라 몇 년 마다 돌아가며 일을 한다는 것이랍니다. 이를테면 농민이 농협에서, 농협직원이 들판에서 일을 해본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면 신분의 격차가 없어질 것이고 노동의 경중을 같이 느끼게 될 터이니 이 어찌 모두가 꿈꾸는 이상사회가 아니겠습니까? 이상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을 현실에서 그 가까이라도 가본다면 참으로 값진 일이지 않을까요?

직원들이사 느닷없는 일에 황당할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그 부담을 풀어주는 일부분의 몫은 농민들에게 있기도 하겠지요. 당신들 수고한다고, 이제 마음이 놓인다고, 같이 살자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그 고단함이 풀리겠지요.

그리고 이참에 진도를 더 빼 봅시다. 농민들에게 사랑받는 농협임직원들이 되도록 농민들과 생체리듬을 같이 하는 일 말입니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같이 고민을 나누자는 것이지요. 불가능할까요?

한꺼번에 제대로 바뀔 수는 없지만 천천히 언젠가는 그 방향으로 가야할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 많은 일들이 서로의 처지를 바꿔보고 입장을 나눠보면 안 풀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토록 주장하는 여성농민 문제를 으뜸으로 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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