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춘마을 밀밭은 어떻게 됐을까

  • 입력 2017.09.24 11:36
  • 수정 2017.09.24 11:39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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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백남기 농민 동네, 부춘마을 그림 박홍규 화백

전남 보성군 웅치면 유산1리 부춘마을. 고 백남기 농민의 고향이자 1982년 귀향한 뒤 약 33년 동안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다. 백남기 농민이 애착을 갖고 지켰던 부춘마을 밀밭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보성읍에서 웅치면소재지로 들어서는 길 옆엔 웅치초등학교가 있다. 백남기 농민은 잠깐 고향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경찰 공무원인 부친을 따라 자주 이사를 가야 했던 걸로 알려졌다. 1929년 개교한 웅치초는 지난 3월 보성남초등학교로 통폐합되며 폐교됐다. 지난 20일 찾은 웅치초교는 닫힌 교문 뒤로 수풀만 무성했다.

면소재지로 진입하지 않고 중산리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 유산1리로 진입하는 길이다. 이 길로 보성강을 건너면 왕초마을이 나온다. 유산1리는 왕초마을과 부춘마을로 이뤄져 있고 이장은 두 마을이 번갈아가며 맡고 있다고 한다. 유산1리 주민은 90명, 가구 수는 52호로 그 중 46가구가 농가다. 벼농사가 중심인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왕초마을을 지나 길을 따라가면 2001년에 세운 부춘마을 표지석이 나온다. 마을 이름이 부유할 부(富)에 봄 춘(春)자다. 부춘마을 맞은편에 활성산이 있고 섬진강 최상류 수원지 중 한 곳이다. 1500년대부터 마을을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입구엔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모충사가 있다. 면암 최익현 선생을 주벽(主壁)으로 세심당 백홍인 선생 등 순국선열 5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1905년 을사늑약 뒤 두 선생이 이곳에서 호남의병을 창의할 뜻을 알렸다고 전해진다.

모충사를 비껴 마을에 들어서자 얼마 안가 대나무를 엮어 울타리를 삼은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가면 백남기 농민이 그토록 아꼈던 밀밭으로 이어진다. 그는 집 옆 5,000여평을 밀밭으로 일궈 우리밀을 지켜왔다.

지금 밀밭엔 보성군농민회 회원들이 힘을 모아 콩을 심었다. 그 비탈진 콩밭엔 풀도 함께 무성히 자라 있었다. 콩을 수확하면 백남기 농민의 미망인인 박경숙씨가 된장, 고추장으로 만들 예정이다. 이진하 유산1리 이장은 “마을 주민들도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라며 백남기 농민 1주기를 차분히 맞고 있는 부춘마을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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