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행렬은 멈추지 않는다

고 백남기 농민 1주기에 부쳐

  • 입력 2017.09.24 11:33
  • 수정 2017.09.24 11:36
  • 기자명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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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백남기 농민 선종 1주기를 맞았다. 사회는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 특히 농업계는 변화의 미풍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그 자리에 아직 농민이 남아있다. 농민 백남기가 남긴 ‘백남기 정신’은 무엇인가. <한국농정>은 그의 고향인 보성 들녘과 부춘마을에서 그 해답을 찾아봤다. 지난해 11월 전남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 고 백남기 농민의 밀밭에서 고인의 후배 농민들이 ‘백남기 밀’로 명명된 우리밀을 파종하기 전 퇴비와 유박, 비료 등을 뿌리고 있다. 편집자 주

2016년 9월 25일, 백남기 농민은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억울한 죽음 앞에 농민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경찰의 시신 탈취를 막기 위해 영안실 앞을 지켜야 했습니다.

암담했고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이낙연 국무총리가 정부를 대표해 사과하고 몇가지 인권조치가 취해지고 있습니다.

촛불혁명으로 이뤄낸 것이며, 그 촛불혁명은 백남기 농민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박근혜정부의 폭정에 시달린 국민들은 백남기 농민을 지키기 위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모여들었고, 국민적 힘은 촛불광장으로 번져갔으며 마침내 11월~12월 촛불혁명을 탄생시켰습니다.

백남기 농민의 삶과 정신이 양심있는 분들을 모여들게 했고 하나 되게 한 것입니다. 백남기 농민의 정신은 불의를 용납하지 않고 정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군부독재에 맞서 청춘을 바쳤습니다. 민족농업을 지켜내기 위해 온 인생을 걸었습니다. 농민을 무시하는 부당한 권력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진리를 실현하는 것 외에 어떤 이익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자격을 거부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백남기 농민은 강한 희망을 간직한 분이었습니다.

농업이 붕괴하고 농촌이 황폐화 돼 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농업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포기한 적 없었습니다. 밀밭을 일구며 희망을 노래했고 공동체농업의 꿈을 만들어 갔습니다.

농민운동이 힘들어져도 동지들을 더욱 따뜻하게 안아주고, 진보정치 운동의 시련기에도 한길을 지켜온 분입니다.

생명평화의 일꾼 백남기 농민은 농민이 천하의 근간이라는 굳은 신념으로 거센 풍파에서도 희망을 키워 냈습니다.

촛불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은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백남기 농민의 정의롭고 뜨거운 삶이 국민을 감동시켰기에 국민이 힘을 결집한 것입니다. 백남기 농민의 삶과 정신은 어쩌면 한국농민들의 일반적 모습입니다.

그분의 삶도 쓰러지기 전까지는 평범한 이웃의 삶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의 삶과 정신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고 우리 사회를 깨우게 한 것입니다.

우리 농민들의 삶 하나하나가 감동이고 역사의 자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백남기이고, 더 많은 백남기의 행렬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 여겨집니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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