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성기 춘양농협 조합장

공정하고 투명한 농협을 꿈꾸다

  • 입력 2017.09.22 10:52
  • 수정 2017.09.22 11:00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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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조합장이 되고 ‘저도 일체 부탁을 안 할 거니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정 조합원에 더 주는 직원은 가차 없이 인사조치를 하겠다’고 굉장히 강하게 밀어붙였다.”

공정하고 투명한 농협 운영. 권성기 춘양농협 조합장이 초지일관 강조한 철학이다. 신념에 가까웠다.

춘양농협엔 한 차례도 농민 출신 조합장이 없었다고 한다. 권 조합이 취임한 2009년 12월 이전까진 대부분 직원 출신 조합장이었다.

지역이 좁은데다 보수적 색채가 짙은 지역에서 현직 조합장, 직원 출신 후보와 맞붙은 농민 출신 후보. 그 누구도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하지만 지역엔 “농협 직원은 도둑놈”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는 “직원들이 도둑질을 못하게끔 하겠다.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기적같은 당선을 이뤄냈다. 권 조합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정말 농협을 정직하고 바르게 운영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당선 이후 3년 동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청탁에 시달려야 했다. 그전까지 농협이 어떻게 굴러갔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 과거의 악습을 무 자르듯 자르니 민원이 폭발적으로 발생했다. 예를 들면 면세유다. “권 조합장 예전에는 더 줬는데 왜 그러냐, 평생 조합장 할 줄 아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하지만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조합장하고 아는 사람이 덕을 보면, 그렇지 않은 조합원은 그만큼 손해를 봐야 한다. 그게 용납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충격적인 사건이 이어졌다. 한 농협 직원이 정기인사철이 되자 결재판에 현금봉투를 가져왔다. 조합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돈으로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따끔히 혼내고 돌려보냈던 권 조합장은 이듬해 인사철 전 직원을 모아 놓고 “외부를 통한 인사청탁 시 그 누구를 막론하고 농협 홈페이지에 게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후 바로잡혔다.

권 조합장은 “농민의 입장에서 바라본 농협은 공평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5,000평의 사과농사를 짓던 그가 농협에서 외상으로 농자재를 구입하고 수확철에 분명히 갚았지만 농협 직원은 갚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사례가 본인뿐만이 아니었던 것. 권 조합장이 농협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수십 개의 거래처가 있지만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일체의 만남을 갖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지역에서 농협의 비판적 감시자 역할을 해온 농민회 회원들도 절대 딴 짓을 하진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목소리를 모을 정도다. 그는 묵묵히 따라준 직원들에 대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권 조합장은 농협중앙회 개혁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일례로 대신하겠다고 답했다. 그가 조합장에 당선되고 당시 농협중앙회장이 춘양농협을 방문하기로 한 일이 있었는데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농협중앙회 경북본부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훈계조의 얘기가 이어졌다. 당시만 해도 직원 출신 조합장이 대부분이다 보니 보통은 지역본부장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권 조합장은 항의했고 결국 회장 방문은 없던 일이 됐다.

더 큰 문제는 얼마 뒤 일어났다. 지역본부 검사역이 춘양농협을 방문해 “권 조합장님 그렇게 깨끗한가, 감사를 해봐도 되겠나”라고 얘기한 것이다. 결국 사단이 났다. “당장 감사를 해라, 조금이라도 걸리는 게 있으면 끄집어내라, 일개 검사역이 조합장을 위협해.” 권 조합장의 일성이었다. 이튿날 그 검사역은 “죽을 죄를 지었다”며 사과했다.

350년째 터전을 이어온 만큼 지역의 큰집 역할을 해온데다 권 조합장의 아버지는 신망 받는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그가 뼛속 깊숙이 공정함을 강조해온 이유 중 하나일 터. 한사코 자신은 선거직을 할 사람은 아니라던 권 조합장. 그의 얼굴에 ‘청렴결백’을 정진하던 대쪽 같은 조선시대 선비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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