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새 희망의 길을 찾다⑨] 경북 봉화 춘양농협

‘공정함’ 원칙 아래 ‘경제사업’ 중심 농협으로

  • 입력 2017.09.22 10:43
  • 수정 2017.09.24 12:16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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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지난해 정부가 추진한 농협법 개정안이 일부 수정 끝에 국회를 통과하며 농협중앙회 사업구조 개편이 결국 지주체제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사업구조 개편 전면 재평가 및 경제사업연합회 체제로의 전환 등 농협 개혁을 요구하는 농업계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이에 <한국농정신문>은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와 공동기획으로 매월 1회 모범적 지역농축협의 목소리를 통해 농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새롭게 모색할 계획이다.

미래 준비하는 사업체계 개편 … ‘고품질’로 승부, 사과 공선출하회도 눈길

권성기 춘양농협 조합장(가운데)과 임직원들이 지난 18일 올해 2월 완공된 경제사업장 앞에서 “춘양농협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권 조합장은 “경제사업 중심으로의 사업체계 개편은 표를 의식하면 할 수 없는 사업”이라며 “불출마를 각오하고 강력하게 추진했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사과 주산지로 알려진 경북 봉화군 춘양면이 민족의 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붉은색으로 곱게 물들었다. 경북이라곤 하지만 재 하나만 넘으면 강원도 영월이다. 그만큼 고랭지다 보니 춘양면에서 생산된 사과는 색도 색이지만 아삭아삭한 식감과 그 맛이 탁월하다.

그래서 춘양농협 공선출하회가 생산한 고품질 사과는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사과의 신흥강자로 떠오른 춘양농협, 그 비결은 무엇일까.

춘양농협은 농민 출신인 권성기 조합장의 공정하고 투명한 농협 운영 속에 경제사업 중심으로 빠르게 체질개선을 추진해왔다. 이 과정에서 사과 공선출하회를 대대적으로 육성하는 등 모범사례를 만들며 지난해 전국 공선출하회 시상식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농협 창립 55주년 기념식에선 모범적 농협에 수여되는 총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엔 잘 안 알려져 있다. 권 조합장의 조합운영 철학 자체가 공정함에 기반하다보니 모범사례조차 외부에 드러내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 했던 터. 몇 차례 섭외 끝에 지난 18일 권 조합장과 직원, 조합원들을 만나 춘양농협의 변화와 그 배경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미래를 위한 사업체계 개편

지난 2009년 12월 취임한 권 조합장은 올해 1월 치러진 조합장 선거엔 출마하지 않으려 했다. 불출마를 전제로 경제사업 중심 사업구조 개편을 추진해와서다. 실제로 권 조합장은 지역에서 신망받는 농민을 후보로 추천했지만, 그 후보가 불출마하며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결국 자신이 나서게 됐다. 공정성 확립 등 강력한 개혁을 추진해온 만큼 낙관하기 어려웠지만 권 조합장이 선택됐다.

이후 춘양농협이 추진해온 사업체계 개편은 연속성을 띨 수 있었다. 큰 얼개 중 한 축은 새로운 경제사업장이다. 일단 경제사업장은 춘양시내에선 외각이지만, 법정면·소천면 지점과 거리상 중간인 곳으로 옮긴 다는 계획이었다. 당연히 춘양면 조합원들은 볼멘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기존 춘양시내에 있던 경제사업장이 외곽으로 빠지면 다소 불편함이 뒤따를 수밖에 없어서다.

권 조합장은 “기존 사업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조합원에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농촌형 농협은 어느 농협이든 어렵다. 기존의 방식으로 기존의 사업장을 끌고 간다면 몇 년 이내에 큰 어려움이 올 수 있다. 지점별 신용사업도 곧 한계가 온다. 한 곳으로 뭉칠 수 있도록 미래를 보고 구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상 단계에선 임직원들 사이에서 “뒷감당 할 수 있겠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권 조합장은 “경제사업 중심 사업체계 개편은 누군가는 했어야 하지만 표를 의식하면 할 수 없는 사업”이라며 “불출마를 각오하고 강력하게 추진했다”고 덧붙였다.

아직 어려움은 남아있다. 경제사업장은 올해 2월 열었지만 애초 함께 매입하려던 부지 땅값이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권 조합장은 “부지매입만 원활히 이뤄지면 이후 어떤 어려움이 와도 춘양농협이 순탄하게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권 조합장의 자신감은 이미 지난해 1월 문을 연 주유소 사례에서 그 배경을 확인할 수 있다. 춘양농협 주유소가 문을 여는 날 아침 지역 일반 주유소 기름값이 왕창 떨어진 것이다. 이전까진 농협 주유소가 없으니 부르는 게 값이었다면 이젠 농협 주유소가 가격을 공시하면 일반 주유소는 여기에 30원을 더하는 모양새다. 또한 경제사업장에 새롭게 연 백화점식 자재센터에선 기존 800가지에 불과하던 품목이 3,700가지로 늘며 웬만한 영농자재는 다 구비했다. 가격까지 낮추니 외부로 나가던 농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고, 더불어 인근 철물점의 농자재 가격 인하도 견인했다.

권 조합장은 사업체계 개편을 중심으로 조합원 실익 사업도 꾸준히 추진했다. 농약값 인하가 일례다. 취임 이듬해인 2010년, 당시 농협에선 매출전표를 전산발행하지 않았다. 이를 보고 일반 농약상이 가격차를 이용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권 조합장은 농협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다며 전산발행과 함께 대폭 가격 인하를 지시했다. 농협 차원에선 3억원 가량의 손실을 봤지만 지역 농약상이 가격을 인하하며 농가엔 연간 10억원의 혜택이 돌아갔다.

신뢰 기반한 사과 공선출하회 육성

농가소득 향상을 위한 공선출하회 조직에도 공을 들였다. 2011년 60여명의 농가를 모아 구성한 사과 공선출하회는 당시 262톤을 출하해 6억1,5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6년 130여명으로 증가했으며 출하량 1,421톤, 매출 31억4,400만원을 올렸다. 물량이 모이니 판로 개척도 한결 수월해졌다. 서울과 경기 등 도시농협에 직판매를 시작했고, 품질로 승부해 점차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2014년엔 정부, 지자체 보조와 자부담을 포함해 25억원을 들여 농산물 산지유통센터(APC)도 증축했다. 연간 3,000톤의 사과를 취급할 수 있고 당도와 색채 선별장치도 구입해 고품질 사과를 출하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우여곡절도 있었다. 초창기엔 10월에 출하해서 이듬해 5월에 정산을 하니 농가에선 믿고 맡기기엔 불안한 감이 있었다. 운영위원을 선출해 자체적으로 운영을 하고 여기에 모든 것을 공개하는 투명성을 더하니 조합원들의 신뢰가 뒤따랐다. 윤한승 춘양농협 경제상무는 “모든 것을 공개하니 농협에 맡겨놓고 팔아도 손해는 안 본다는 신뢰가 생기며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선출하회가 튼튼해지면서 홍수출하를 방지하는 한편 포전매매로 돈을 뜯기는 고질적 문제도 점차 사라졌다. 춘양농협은 현재 사과 공선출하회 외에도 토마토 공선출하회에 집중하고 있으며 양채류 등 작목별 작목반을 육성해 공선출하회로 묶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춘양농협은 이전까진 신용사업 위주의 일반 지역농협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보수적 색채와 직원 출신 조합장의 답습으로 악습이 이어져왔다. 권 조합장은 공정하고 투명한 농협을 원칙으로 경제사업 중심의 사업구조 개편으로 미래를 준비해왔다. 이런 그의 농협 운영이 멀지 않은 미래에 조합원들 사이에서 “권 조합장이 옳았다”는 메아리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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