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패커가 최선인가?

[ 연재기획 ] 우리 축산의 대안을 찾다
기업형 패커 육성, 시장 과점 부를 수 있어
“가격경쟁력·자금조달 장점 갖춘 기업형 패커에 정부 지원 해야하나”
협동조합형 패커, 어떻게 육성할지 논의 필요

  • 입력 2017.09.17 12:16
  • 수정 2017.09.17 12:25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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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에서 유통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축산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축산유통 정책은 어떤가? 뚜렷한 방향을 잃은 채 시장개방의 파고 속에 흔들리고 있다. 땜질식 처방을 넘어 축산에서의 식량주권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목표 설정이 시급하다. 편집자 주

4. 축산물 유통,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① 수입 공세에 축산자급률 휘청

② “대안 찾자” 나선 생산자

③ 정녕 패커가 최선인가?

④ 축산물 유통, 현장서 답을 찾자
 

지난 8일 부산경남양돈농협(조합장 이재식)은 경남 김해에서 축산물종합유통센터 기공식을 열었다. 기존 2개의 도축장을 통합해 오는 2019년 12월 완공예정인 이 센터는 총 사업비 1,950여억원을 투입해 도축장(1일 도축능력 소 700두, 돼지 4,500두), 육가공장(1일 가공능력 소 150두, 돼지 3,000두), 부산물처리장, 폐기물자원화시설, 폐수처리장 등이 설치될 계획이다.

부경양돈농협은 도축, 가공, 유통을 한 곳에서 처리하는 이 센터가 축산유통구조개선 및 선진화를 위한 정부 정책(대형 패커 육성)과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이 곳뿐 아니라 지역 양돈농협들은 각자 대형 패커 건립이 한창이다. 도드람양돈농협(조합장 이영규)은 내년 2월로 예정된 전북 김제 FMC 완공을 앞두고 있으며 대전충남양돈농협(조합장 이제만)도 충남 천안에 축산물종합유통센터를 건립해 대형 패커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이다.

축산물 패커(Packer)란 1662년 미국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로 축산계열화의 여러 유형 중 도축·가공장 중심의 계열화를 일컫는다. 크게 도축·가공장을 운영 및 소유한 주체에 따라 기업형과 협동조합형으로 구분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거점도축장을 민간 패커(기업형)로 육성하고 품목조합형 패커는 2020년까지 점유율을 소는 8%, 돼지는 1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또, 농협경제지주의 안심축산 브랜드는 산지전속 출하 확대로 산지계열농장을 2020년까지 200농가로 확대해 산지조달 비율을 80%로 높이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문제는 기업형 패커 육성에 정부지원이 필요하냐는 대목이다. 주주의 이익실현이 목표인 기업형 패커는 수직적 계열화를 통해 생산자를 종속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양돈부문에선 대기업들이 직접 생산까지 뛰어들어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 중소육가공업체는 고돈가에 대기업과 경쟁에까지 내몰려 이중고를 겪는 실정이다.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대형 패커가 중소육가공업체들을 고사시키고 시장을 과점하면 육계부문처럼 계열화의 폐단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다.

대한한돈협회 관계자는 “패커 육성의 뱡항은 맞지만 정부가 기업형 패커까지 지원하면 일반농가나 중소육가공업체, 사료회사들은 이들과 경쟁이 안 된다. 기업이 수급조절까지 자신의 이윤을 우선하거나 이윤이 발생하지 않을 시 외국자본에 매각하면 식량주권이 흔들리는 큰 문제가 생긴다”고 경고했다.

농가와 의사소통이 개방적인 협동조합형 패커를 육성하면서 도매시장의 기능을 유지하면 기업형 패커와 공정한 경쟁을 하면서 유통을 매개로 농가와 소비자가 상생하는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도드람양돈농협 관계자는 “우선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오프라인 유통구조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절감하고자 온라인 사업 확대를 계획 중이다”라며 “민간 패커는 협동조합형 패커보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자본조달이 용이하다. 도드람은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주요 경제사업을 자회사를 통해 결정함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협동조합형 패커 육성의 기본 전제는 소유와 경영의 명확한 분리를 토대로 현재 양돈조합들이 신규사업 공동참여를 통한 단계적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라며 “유통 중심의 패커육성 정책을 한돈산업 전체 차원의 패커 육성정책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선 축산계열화사업법을 개정해 계열화사업자의 농장 소유 또는 사육업 영위를 제한하고 향후 협동조합형 패커간 통합을 위한 법령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궁극적으로 대형패커 육성이 유통단계를 기존 4~6단계에서 2~3단계까지 축소해 유통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유통비용 축소가 유통비 절감으로 이어져 소비자가격 인하까지 기대하기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김재민 농축식품유통경제연구소 실장은 “소비자들의 안전, 위생, 건강과 관련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유통비용은 증가하기 마련이다”라며 “어떤 유통단계도 비효율이나 높은 비용을 원하지 않는다. 유통비용을 절감해도 소비자나 생산자 편익으로 돌아가지 않고 해당 유통단계 주체의 몫이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김 실장은 “협동조합형 패커가 활성화된 유럽은 그 산업적 특수성이 오랜기간에 걸쳐 구축됐기 때문에 가능했다”라며 “이미 기업형 패커가 큰 지분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선 협동조합 패커의 미래는 불투명하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협동조합 개혁이 중요하다. 협동조합은 축산농가가 쓰기 편한 플랫폼, 민간유통업자들이나 배합사료회사들이 이용하기 편한 플랫폼으로 변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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