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연휴에는 농촌일손 나누기

  • 입력 2017.09.15 14:09
  • 수정 2017.09.15 14:13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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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마늘농사를 시작하는 이 즈음이 연중 가장 바쁘고 고된 철입니다. 마늘농사는 품이 많이 들고 기계화가 덜 된 작목이다 보니 농사가 힘에 부쳐서 다른 집들은 농사규모를 줄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집은 되레 양을 늘려가는 상황이니 그 부담이 더할 수밖에요.

구점숙(경남 남해)

마늘농사의 가장 시작은 씨마늘 준비입니다. 여름내 잘 보관해둔 마늘을 일일이 쪽을 분리하는 것인데 이 작업도 만만찮게 손을 잡습니다. 게다가 이 일은 시어머니께서 도맡다시피 하시므로 초가을 날, 퍽이나 바쁘십니다.

그런 사정을 잘 아시는 어머니의 마을 동무분들께서 어머니를 도와주시러 우리집에 오셨습니다. 갑자기 오신 분들의 점심식사를 부랴부랴 준비해서 대접을 하는데 마을분들께서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는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분명 다섯 분인데 신발이 딱 두 종류뿐이었습니다. 이것은 뭐지? 국론이 분열되다보니 신발공장 사장이 신발모양이나마 통일단결 시키려고 두 가지 신발만 만든 것인가? 아예 한 가지는 어떨꼬?

글쎄요, 결코 그 문제는 아닐 테고 여기에는 묘한 함수가 있을 법 합니다. 비단 신발뿐만 아닙니다. 옷을 사도 동무들끼리 비슷한 모양과 색깔을 고르는 것을 여러 번 봐 왔습니다. 젊은이들이 개성을 추구하는 편인 반면, 오히려 연배가 있는 분들은 통일성을 중요히 여기는 것 같습니다. 오랜 공동체 생활 과정에 미감도 비슷하게 발달하고, 생활적 요구도 비슷해지나 봅니다.

새로운 자극 없이 듣고 보는 것이 주변분들이다 보니 농사도 생활도 주변사람들과 비슷해지는 것이겠지요. 우리부부가 여기저기서 짬뽕으로 배운 농사기술을 시험하고자 다른 집들과는 때에 안 맞게 친환경적으로다가 약제 살포를 할라치면 지나가는 마을분들께서 무엇을 하는지 꼭 물어보시곤 하는 것도 그 마음의 발로이겠지요. 모든 생활상의 요구를 어깨너머로 배우고 익히는 일이 다반사이다 보니 종내에는 미적 감각도 엇비슷해지는 것인가 봅니다.

철에 맞춰 봄에는 꽃을 보며 농사를 짓고 여름에는 아침저녁으로 더위를 피해 일하다가 한낮에는 그늘에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그렇게 엇비슷하게 사는데, 올 가을 추석연휴가 무려 열흘이라지요? 이 무슨 하늘을 돌아 떨어지는 별 같은 이야기일까요?

수확과 파종의 농사 절정기에 연휴가 열흘이면 누군가는 열흘을 쉰다는 말인데, 사실 뭐 온전히 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농민들에게는 꿈같은 얘기입니다. 물론 긴 연휴도 내수 진작을 위한 것이라고 하니 행정가들의 고민이 많겠다만 농민들은 또 좀 다른 생각도 있습니다.

사회 양극화된 문제나 산업 간의 불균등이야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으니 선언적으로 풀 수는 없겠지요. 또 각자가 다 다른 삶을 살고, 삶의 자세나 만족도가 다 다른데 획일적인 휴식법이 있을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더불어 사는 세상인 만큼 사회적으로 서로의 처지를 더 살펴보고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농민들은 억하심정이 크지요. 수십 년 간 다른 산업의 밑거름이 되어왔는데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서는, 먹거리 안전문제는 거론돼도 농민의 삶은 묵살되고 있으니 농번기의 10일 연휴가 남일 같기만 합니다. 그러니 대통령이나 농림부장관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떨까요?

`국민 여러분, 열흘간의 추석 연휴를 충분히 즐기십시오. 그렇지만 농번기이니만큼 그 중 일부의 시간을 내어 농촌현장으로 가서 일손나누기를 합시다. 저부터 남해군으로 마늘 심으러 가겠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노동을 나누는 것만큼 값진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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