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개헌과 농민헌법

  • 입력 2017.09.15 13:45
  • 수정 2017.09.15 13:49
  • 기자명 이춘선 전여농 정책위원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0년 만의 개헌을 앞두고 현재 국회 개헌특위에서는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권역별 국민대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맨 처음 부산에서 권역별 국민대토론회가 열리던 날, 1시간 전에 부산시청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30분 전에 토론장으로 갔지만 토론회 장소인 대회의실은 문이 잠겨있었다. 벌써 인원이 다 차서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토론회에 참가하려고 왔던 많은 국민들이 밖에서라도 보게 해달라고 출입문을 열고 함께 토론하자고 했지만 경찰 2~3명이 지키고 선 출입문은 국민들에게 열리지 않았다.

수백만명이나 되는 부산·울산·경남을 한데 묶어놓고 겨우 150~200석 규모의 작은 공간에서 국민 대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정작 국민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미리 들어갈 사람이 마치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꽉 차서 못 들어가는 이런 토론회가 어떻게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인지 한참을 밖에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겨우 토론회 복사본 자료만 달랑 들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 농민 진영에서는 헌법 개정에 대한 회의 및 여러 교육과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농민들도 이번 헌법개정에서는 농민의 기본권 쟁취와 식량주권 실현을 위한 범농업계 농민헌법 운동본부를 추진하기로 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 말은 지난 시기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걸 명시하기 위해 지난시기 광우병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나 작년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서 수도 없이 읊었던 헌법 조문이다. 이는 헌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농민들과 국민들은 대한민국 헌법이 어떻게 이뤄져 있고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저 헌법은 국가에서 만든 것이고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나의 삶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왜 지금 국회 등 많은 권력자들은 헌법을 개정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들은 권력구조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재편하는 데만 관심이 있지, 정작 논의해야 할 국민들의 권리는 어떻게 담아내고 국가의 의무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는 듯하다.

얼마 전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우리 농민들에게 해당되는 내용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았다. 121조에 경자유전의 법칙, 소작금지제도, 123조에는 농업이 경제분야의 하위 산업으로 분류돼 그저 몇 줄 적혀져 있을 뿐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본 농업과 농민은 철저하게 상품화돼 있었다. 그렇다 보니 농업은 언제나 기업들의 이익에 의해 철저히 희생됐고, 농산물가격 또한 지켜질 수 없었던 것이다. WTO·FTA 등 그동안 수많은 협상에서도 다 내어줄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속에서 얼마 전 전국을 휩쓸었던 살충제 계란 파동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농업이 하나의 상품으로 밖에 취급되지 못하니 우리 국민들의 생존을 유지하는 먹을거리 또한 상품 경제의 논리에 철저히 짓밟혔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대책이라고 내어놓은 것이 동물복지다. 그런데 여기에는 농업과 농민들의 복지는 없다. 정작 닭을 키우고 농작물을 가꾸는 농민들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문득 이런 물음이 생긴다. 농사를 짓는 농민이 행복해야 그 농산물을 먹는 국민들도 건강하고 행복한 농산물을 먹지 않을까? 이번 헌법 개정에서 우리 농민들은 뭘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한 대목이다.

헌법에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명시했듯이 이번 헌법개정에서는 우리 농민들도 농산물 가격이라도 최소한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최저농산물 가격보장과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가치는 반드시 명시돼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짓는 나라,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국민들의 먹을거리가 지켜지지 않을까? 이번 헌법개정에는 반드시 농민들이 안정된 경작으로 국민의 먹을거리 기본권이 지켜질 수 있도록 국가의 의무가 명시되는 헌법개정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