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생명의 애매함

  • 입력 2017.09.09 00:28
  • 수정 2017.09.09 00:39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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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을 전공하고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정년퇴임을 맞이했던 가까운 지인이 정기 건강검진을 받고 폐에서 1cm가 넘는 덩어리를 발견했다. 평소 폐 기능이 좋지 않아 주변에서 담배 끊기를 권하던 분이었기에 본인을 포함해서 주변에서도 우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당연히 의학 기술이 좋다고 생각되는 서울대 병원에서 조직검사도 받고, 최신의 다양한 MRI나 다중 검출 CT 등 고액의 첨단 분자영상 검사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환자의 불안을 풀어 줄 것으로 예상했던 다양한 첨단검사를 받은 후 생겨났다. 폐 속에 생긴 세포 덩어리는 조직검사에서 암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애매한 검사결과가 나왔고, 이는 수백만 원을 들여 받은 각종 영상검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흉부외과의 전문의도 수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확실히 말해주지 않았다. 환자는 분노했다. 폐에 생긴 덩어리가 암이라면 하나뿐인 생명을 위해 수술 받을 마음도 있는데 도대체 전문의라는 이들이 그토록 첨단 검사를 하고서도 그것 하나 판정 못한다면 속은 것 아닌가 하는 마음마저 토로했다.

물론 담당의사로서는 암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폐 절제 후 삶의 질을 생각해 나이 많은 환자에게 무조건 수술 받으라고 권하기보다는 환자 본인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지극히 타당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공학자로서 평생을 계산과 분석 속에 살아 온 환자는 암이면 암, 정상이면 정상이라고 권위를 가진 이가 판단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기에 첨단 진단검사의 결과나 의사들의 그런 애매함을 참지 못했다. 각종 첨단 진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에게 수술 여부를 묻는 의사들이 무책임하게 까지 느껴진 것이다.

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지만, 여기서 세상을 바라보는 각 개인의 관점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됨을 보게 된다. 수학이나 공학과 달리 생물학은 우리가 익숙한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다. 흑백이 아니라 일정 범위 내에서 완충지대를 지닌 상태로 존재한다. 또한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는 의학이나 방역, 검역 등은 사전예방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라고 해서 유비무환의 예방적 태도를 요구한다. 암인지 아닌지가 중요했던 환자의 몸에 생긴 조직은 암은 아니나 암으로 이행되는 과정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기에 폐기능이 좋은 젊은이라면 예방 차원에서 수술하지만, 폐기능이 떨어진 고령 환자에겐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냥 두기에는 폐렴 등의 상황에서는 악화될 수 있기에 치료는 필요하다. 결국 이 점을 이해한 환자는 편안한 마음으로 포인트 방사선 치료를 선택해 상황은 잘 마무리됐다.

생명체를 다루는 농업과 축산 분야에 있어서 종종 접하게 되는 다양한 사회적 논란의 이면에는 위와 같은 관점의 상충이 있다. 요즘 시끄러웠던 살충제 계란이나 GMO 논의도 그렇고, 개 식용문제도 단지 동물을 먹는다, 안 먹는다로 바라보는가 하면, 식물도 식용과 관상 내지 장식용, 건축재료 등으로 구분하듯이 동물도 다양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한다,

흑백의 이분법적 잣대로 진행되는 농축산 생산물 관리는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 혼란스럽게 하고, 현장에서 유효하지도 않다. 언제부터 생명체와 삶을 이토록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게 됐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나라의 정책을 포함해 농축산물에 대한 사회적 시각에는 옳고 그름의 단선적 접근보다는 생명체의 애매함을 수용할 수 있도록 폭을 지닌 중층적 관점과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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