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권리선언’ 그 의미와 한계는?

[기획] 농민헌법과 농민권리선언

  • 입력 2017.09.08 15:38
  • 수정 2017.09.13 20:46
  • 기자명 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정될 헌법에 농민의 기본권을 담아야한다는 농촌사회의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할까? 때마침 논의 중인 유엔인권위원회의 ‘농민과 농업노동자 권리 선언(농민권리선언)’은 우리에게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물론이고 당사자인 농민들도 그 존재를 잘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의 연구보고를 토대로 그 내용을 알기 쉽게 짚어본다. 

 

 

① ‘농민권리선언’은 어떻게 나왔나

② `농민권리선언', 그 의미와 한계

③ `농민권리선언', 앞으로 남은 길

 

 

 

'농민'의 재정립

 

‘혼자서, 또는 다른 이들과 함께, 또는 공동체로서, 생계나 판매를 위한 소규모 농업 생산 일을 하고 있거나 종사하려는 사람으로서,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상당 수준으로 가족이나 가사노동 혹은 비화폐적인 방식으로 조직된 노동에 의존하며, 토지에 특별한 의존성과 애착을 갖는 사람.’(1조 1항)

총 27개 조항으로 이뤄진 농민권리선언의 제1조는 선언의 권리당사자인 ‘농민’의 정의다. 핵심은 선언에서 사용된 농민을 뜻하는 영문 단어 ‘Peasant’다. ‘농업경영인’을 포함할 수 있는 ‘Farmer’가 아닌 ‘소작농’을 뜻하는 단어로 농민 집단을 표현한 것에서, 농경지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권리 주체 모두를 포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상기된 것처럼 농민 개개인뿐만 아니라 ‘다른 이와 함께 일하는’, 즉 농민들의 공동체 역시 선언의 대상에 포함된다. 이는 여전히 기계화와 생산성 중심의 농업과 거리가 먼 마을·가족공동체의 농민들을 포용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선언은 또한 ‘농촌 지역의 노동자’와 농업 종사를 위해 타국에서 들어온 이주·계절노동자 역시 권리의 주체에 포함시켰다.

 

파격적인 주요내용

 

선언의 핵심조항들은 그간 유엔이 농업에 가졌던 관심의 정도를 생각하면 매우 진보적이다. 대부분의 조항이 현재 우리나라의 농업 환경과 연관이 있는데, 우리가 특히 관심을 가질만한 부분은 개인의 생명과 표현의 자유·생계와 수입에 대한 권리·종자에 대한 권리·토지에 대한 권리 등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선언을 관통하고 있는 중심명제는 ‘국가 정책과 자본, 그리고 초국적 기업으로부터 농민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당장 국가의 의무를 다루는 2조에서부터 ‘국가는 개인과 민간단체, 초국적 기업 등이 농민과 농촌 노동자의 권리 추구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결사의 자유를 논하는 제9조에 따르면 자신들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농민들은 조직이나 연합을 구성할 수 있으며, 국가는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장애 요소를 없애야 한다.

제16조 ‘적절한 수입과 생계, 생산수단에 대한 권리’는 우리나라 농민들이 주장하고 있는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와 맞닿아 있다. 3항은 ‘적절한 삶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는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시장에 완전하고도 공평하게 접근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토지에 대한 농민의 ‘접근권’이 아닌 ‘권리’를 명시한 제17조는 유명무실해진 우리나라 헌법 속 경자유전의 원칙을 재고하게 만들 좋은 촉진제다. 토지강제수용 피해 방지와 여성농민의 동등한 토지 소유권 보장도 담겼다.

제15조 ‘먹거리에 대한 권리와 식량주권’, 제19조 ‘종자에 대한 권리’, 제20조 ‘생물다양성에 대한 권리’는 비아캄페시나의 식량주권운동을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조항들이다. 선언은 이 조항들을 통해 각국의 농촌사회가 생산한 ‘적절한 먹거리’와 그 생산체계 그리고 이를 위한 전통적인 식물유전자원들을 보전하고, 모든 논의와 의사결정에 농민이 참여할 권리를 보장한다. 이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초국적농업자본의 유전자조작생물(GMO)로부터 각지의 전통농업을 지킬 중요한 기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선언의 한계 

 

문제는 선언의 일부가 그 허술한 내용으로 인해 현실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윤병선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선언의 토대가 된 비아캄페시나의 2009년 선언과 비교해 몇 가지 한계점을 지적했다.

우선 가격보장과 관련한 선언의 조항이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주장이다. 비아캄페시나의 선언이 ‘정당한 가격을 받을 권리,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권리’ 등을 분명히 명시한 반면 이번 선언은 그저 적절한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시장에 ‘접근’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고 있다.

식량주권에 대한 권리 역시 협소하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선언의 해당 내용이 유엔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의 일반논평(1999)’에서 적시한 ‘적절한 먹거리에 대한 인권’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종자의 권리도 매우 좁은 범위로 인정돼 있으며, 생물다양성과 관련해서도 ‘다양성을 위협하는 특허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나 ‘지적재산권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은 빠져 “초국적농업자본의 이해관계와 직접적인 충돌이 있는 지점은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