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덩치·사업 너무 키우면 곤란

  • 입력 2017.09.08 14:30
  • 수정 2017.09.08 14:37
  • 기자명 김순재 전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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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넘어선 투자

앞일을 정확히 예측하기란 힘들지만 터무니없는 예측이나 고집으로 농협의 경영과 농민 조합원들이 힘들어진 경우를 종종 봐 왔다. 농협은 농협의 여러 투자에 대한 예측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농협들은 예측을 무시하고 부정확한 판단을 근거로 고정투자를 진행하고, 그 결과 경영이 힘들어져 궁극적으로는 협동조합 이용자에게 제대로 된 복무를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우스운 것은 그런 농협임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은 내용을 인식하지 못하고 농협이 본래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농협은 ‘경영을 위해서 한다’고 해도 큰 규모의 고정투자는 매우 조심해야 하고 투자 내용에 대한 객관적인 검토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덩치만 있고 내용이 부실한 농협은 정리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럴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의 몫이다. 당연하건데, 농협은 본래의 설립목적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사진은 농협중앙회 홈페이지 갈무리.

농협은 ‘공산당들의 조직’이다?

나는 조합장직을 수행 할 때나 그 이후 어디서 농협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에 종종 농협이라는 조직은 ‘협동조합’이라는 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농협은 공산당들의 조직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해 왔다(꼭 이분화가 되는 것도 아니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지만 좌파·우파로 구분하면 농협은 좌파조직이고, ‘좌파는 공산당이다’라는 인식은 근세사에 전쟁을 겪으며 분단국이 된 우리나라에 깊이 인식돼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 국가도 일부는 그러하지만 국가의 산업구조에서 공산당들은 산업 근간을 국가가 공유하고 있다. 농협도 농업이라는 부분에서는 생산과 유통을 공유하고자 만들어진 조직이니 그 농협 태생의 근간·뿌리는 공산당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공산당들이 망했거나 망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물어가면서 농민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많았다. 논리·이론의 부분을 떠나서 현실은 현실이며 매우 냉정한 것이다. ‘공산당의 조직’은 경쟁에 의해서건, 공작에 의해서건,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서건 현저히 축소됐거나 거의가 소멸단계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온 역사가 그러했듯이 소멸된 권력-국가의 구조에서도 긍정적인 것들은 인류에게 이어져 가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좌파 상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농협의 운명은 앞으로 어찌될까? 개인적 견해로 앞으로 당분간 존재를 유지함에는 거의 무리가 없다고 본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당분간은 15년 안팎이다. 15년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면 지금의 ‘농협’이라는 조직은 ‘한국농어촌공사’처럼 흘러가 버릴 것으로 본다. 내 기억에 농어촌공사의 전신은 우리농민에게 있어 농지개량조합이었고, 농지개량조합이 다른 농업관련 조직과 합병·개명을 통해서 농어촌공사가 됐다.

농어촌공사도 과거 농지개량조합시절에는 지금의 농협처럼 지역별·몽리구역별로 농민들이 대의원을 뽑았고 그 대의원들이 조합장(지역농지개량조합장)을 뽑는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수세 폐지 이후의 1990년대에 독재적인 국가권력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을 때, 농지개량조합은 농업진흥공사·농지개량조합연합회 등과 합병·개명하면서 농민들의 조직을 사실상 국가가 소유해버렸다.

국가·정부의 지원을 받아가면서 물관리·농업용수 이용, 농지구획정리 등을 사업근간으로 삼아서 운영하던 농민조직을 국가가 가져가버린 것이고 그 소유의 대다수 자산도 실질적으로 국가의 소유로 돌려 버렸다. 농지개량조합의 많은 시설물들이 부역이라는 사실상의 공동 강제 노무를 통해서 만들어졌거나 유지됐음에도 농어촌공사로 변해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농민들에게 주어진 보상은 없었다.

농민들은 농지개량조합의 변천을 반면교사로 삼아 스스로가 주인이라는 농협이 그리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과거 대의원에 의한 농지개량조합장의 선출과정에서 부정한 내용들이 매우 많았다. 농지개량조합은 부정한 방식의 사업들을 매우 많이 저지르기도 했었다. 나는 그 부정직한 사업 방식들의 방치가 ‘조합’에서 ‘공사’로 바뀌도록 했다고 생각하며 그 진행내용에 농민들도 실질적으로 동조했다고 생각한다. 농업진흥공사, 농지개량조합연합회, 농지개량조합의 중복되고도 비효율적인 사업방식, 부정직한 사업방식들이 통합이라는 미명하에 정리돼 버린 것이다. 과거의 농지개량조합 변천에서 우리 농협도 그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닌지 돌아봐야한다.

중복투자·중복사업

인구 3만 내외의 경남 의령, 경북 군위 같은 농촌지역의 군청소재지에 가면 농협중앙회, 지역농협, 지역축협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이름은 흩어져 있고, 사업은 유사하고, 중복된 투자를 하고 있는 농협이라는 조직은 앞으로 어찌 될까? 과거 농지개량조합의 변천사를 보아 왔음에도 중복된 상태로 ‘농(農)’자 달고 있는 조직들을 왜 농민들은 농협의 주인이라면서 방치 하고 있는 걸까? 저 방만하면서도 비효율적인 조직들이 어찌 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겠는가? 인구 3만 내외의 군 지역을 인구 5만으로 상향한 기준을 만들어 보면 전국에 최소한 80곳 군지역의 농협 조직들이 불필요하게 방만한 구조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산당 국가들의 여러 경제조직들이 생산성이 높고 국민들, 그 사회의 구성원에 제대로 복무했다면 망했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 영세 소농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동조합이 효율성이 아주 떨어진 상태로 지속된다면 농협은 조합원에게 복무하기는커녕 제 목구멍의 풀칠도 제대로 하기 힘들게 바뀌어 갈 것이다. 협동조합도 비용·사업내용, 효율성을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 농민들에게 기여해야 하는 비용이 어디로 새고 있는지, 농민들에게 복무해야 할 인력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주인이라는 농민들은 꼼꼼히 챙겨야 하는 것이다.

공산당들이 망한 실질적인 최대 이유는 생산성·효율성과 관련이 깊다고 봐야한다. 애매한 기점이기는 하지만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고 분배가 적절하다면 공산당 관련 국가들이 망할 이유가 있겠는가?

충북 어디에는 슬레이트 지붕에다가 재래식 화장실을 구조물로 가지고 있는 농협 본점이 있고, 전북 어디에는 황량해 보이는 곳에 덩치만 큼직한 건물을 가진 합병농협의 본점이 있는 것도 보았다. 같은 농협이라는 간판을 달고, 같은 중앙회의 지도감독을 받으면서도 개개법인인 지역농협들의 경영은 너무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런 농협들은 지역민에게 약간의 편의만 제공할 뿐 어떠한 도움이 되기도 힘든 것으로 보인다.

덩치만 키운 농협

지금 많은 농협들이 본 업무량에 비해서 불필요할 정도로 덩치를 키웠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건물·시설 등의 부동산만이 아니라 본질에서 벗어나는 덩치를 많이 키웠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농협들을 둘러보고, 농협의 중앙조직들을 둘러보면 그런 것들은 쉽게 발견된다. 지금은 매우 빠르게 변하는 시기이고 과거의 어느 시기보다도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때이다. 농협은 현재의 금융사업방식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농협다운 금융사업에 대한 전망을 내고 이용고객들과 공유해야 한다. 일부의 지역-품목농협들이 상당히 혁신하고 있는 것이 보이기는 한데 농축산물의 유통은 바닥까지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오고 있는데도 자기 법인 조직의 밥그릇에만 관심을 가진 듯해 안타깝기까지 하다. 이런 시기에도 불필요하게 자기 사업장의 덩치만 키워내는 농협들이 있고, 그 내용들이 외형으로는 이용고객과 조합원들에게 복무하고 실질적으로는 복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곧 농협들도 덩치만 있고 내용이 부실하면 정리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동읍농협의 조합장으로 있었던 시기에 예측한 바로는 동읍농협도 혁신하지 않으면 지금부터 5년 정도 뒤에는 비용 등과 관련해서 경영위기가 올 것이라는 판단이 섰었다. 지금처럼 많은 농협들이 운영·사업을 중복하면 결국 농지개량조합처럼 정리돼 많은 이들은 구조조정 당하고, 조합원들은 손실을 감수해야 된다는 것이다.

한 법인으로서의 지역농협·품목농협·중앙조직

개개의 농협이 고정투자를 과다하게 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액수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조합장으로 있었던 동읍농협 인근의 남창원농협은 몇 년 전에 대규모 유통시설을 세웠다. 인근 농협의 조합장으로서 매우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남창원농협은 몇 백 억의 투자를 집행했다. 사업장의 선정과 이용, 소비자의 분포도 등을 고려해볼 때 그리 무리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을 하면서도 불안과 기대감이 있었다. 불안은 ‘잘못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었고, 기대감은 ‘인근에 대규모 농산물 유통센터가 들어서면 우리지역 농민들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규모가 워낙 컸기에 초기 몇 개월은 노심초사했지만 점점 사업이 기반을 잡혀가는 것으로 보여서 안도했었다. 이런 경우에는 다소 무리해 보일지라도 남창원농협 개개법인 자체의 규모가 있고, 사업장의 입지 등에 대한 판단이 제대로 이뤄진 경우라서 매우 다행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거명하기 힘들지만 그러하지 않은 농협들도 많다는 것이 늘 문제다. 인근 남창원농협이 농산물 유통센터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고 사업을 진행 할 무렵, 우리 동읍농협도 본점과 마트를 신축해야 할 일이 생겼다. 대략적으로 남창원농협이 가진 농산물 소비 시장의 10% 규모인 우리 농협은 투자도 거의 10%선에서 확정지었다. 우리 동읍농협의 여력이 남창원농협의 20% 선까지는 가능했어도, 전체적으로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볼 때, 10%가 적정하다는 판단이었다.

지어놓고 보니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앞으로의 지역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지역농협과 그 이용고객들에게 본질적인 손실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면 부족하거나 불편한 것이 협동조합 경영의 위험을 불러오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더라도 농협은 본래의 그 설립목적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관행에 끌리고, 인정에 끌려서 농협의 사업을 망치게 되는 잘못을 보고도 침묵하는 조합원들은 이미 조합의 주인은 아닌 것이다.

엊그제 농협 관련 기사들 중에 참으로 부끄러운 기사들이 몇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경남 함양의 어느 농협 직원이 26억을 횡령했다는 것이다. 많은 농협관계자들이 그 내용을 은폐하는데 동조했고 그 은폐와 동조로 인해서 엄청난 손실을 조합에 끼쳤음에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우리 농촌 사회가 얼마나 썩었으면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가?

또 다른 기사는 전북 무주의 지역농협 지점장이 반복적으로 여직원들을 성적으로 희롱하고 괴롭힌 일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역시 그 일도 은폐를 위한 조작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농협이라는 조직은 경영과 관련해서도 매우 신중해야하지만 도덕성도 우위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투자 등의 사업 고민도 신중하지 못해 위험을 초래하고 도덕성도 엉망이면 농지개량조합처럼 강제로 없어지지 않을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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