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집 밖을 나갈 자유, 자유

  • 입력 2017.09.08 14:28
  • 수정 2017.09.08 14:30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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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서울에 토론회 가야할 일이 있어서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부엌에 들어섭니다. 저야 아침을 안 먹고 집을 나서면 그만이지만 오늘 세끼를 집에서 먹어야 하는 남편이 있으니 국이라도 끓여 놓으려고 말입니다. 농사일이 바쁜데 집을 비우는 것이 미안해서 반찬이라도 몇 가지 해 놓으려고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비비고 일어났습니다.

사실은 며칠 전부터 괜히 마음이 바빴습니다. 하루 집에 있어서 많은 일을 하지는 않으면서도 하루 집을 비운다는 생각을 하니 이것도 미리 해 놓아야 할 것 같고 저것도 미리 해 놓아야 할 것 같고 그랬습니다. 밥, 국, 반찬 몇 가지를 초스피드로 식탁에 차려놓고 이제 후닥후닥 세수를 합니다.

토론회장을 빙 둘러보니 거의가 남성들입니다. 여성들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대부분은 전여농 간부들입니다. 지역의 여성농민들은 거의 참석을 못 했습니다. 주제가 「농민권리 신장과 헌법개정」인데 여성농민들이라고 관심이 없지는 않을텐데 말입니다. 오고 싶어도 오지 못 한 여성농민들이 생각났습니다. 얼마 전에 들은 여성농민회 회장님 말씀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이 활동하는 여성농민회 간부를 안고 울었다는 이야기요. 제가 한 번 옮겨볼까요?

여성농민회 활동을 하자면 집을 나서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활동은 집에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그 활동가는 집 밖을 나갈 때마다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남편의 허락 없이 나가면 싸움이 되니까 허락하에 나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가야 할 때 못 나가는 경우도 많고, 나가고 싶을 때 못 나갈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 꼭 나가야 하는데 남편이 허락을 안 해 주더랍니다. 그래도 나가야 하는 일이어서 나갔다가 들어 왔더니 “집에 왜 들어왔느냐? 집을 나가라”는 등의 심한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회장님이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 싶어서 와락 눈물이 나더랍니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성농민들이 집을 나서기는 쉽지 않습니다. 집을 나서려면 남편 눈치, 시부모님 눈치 봐야 하고, 허락 받아야하는 것이 보통 가정입니다. 또 농사일을 미뤄두고 나서는 것도 쉽지 않지요. 어디 농사뿐입니까? 아이들 뒷수발, 어른들 뒷수발까지 다 여성농민들 차지다보니 집 밖을 나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저런 상황으로 아예 여성농민 스스로가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얼마 전 TV에서 가까운 도시 한 번 못 가 보신 할머니 이야기를 본적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우리 여성농민들은 그렇게 살지는 않습니다. 자가용 운전까지 하는 여성농민들이 많으니 스스로 이동할 자유가 많지요. 그래도 여성농민들끼리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직도 이런 세상에 사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회의 갔다가 밤늦게 들어갔더니 아직 저녁도 먹지 않고 화가 잔뜩 나 있는 남편에게 “왜 아직도 저녁을 안 먹었느냐?”고 했더니 “누가 차려줘야 먹지!” 한 이야기, 지난 8월 23일 서울에서 전국여성농민대회가 있었는데 거기에 가기위해 그 전에 몇 차례나 있었던 모임에는 아예 나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하면서 같이 남편 흉을 보기도 하고 서로 위로를 하기도 합니다. 물론 결론은 “그래도 활동을 포기하지 말자”입니다. 힘들어도, 싸우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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