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권리선언’은 어떻게 나왔나

[기획]농민헌법과 농민권리선언

  • 입력 2017.09.03 12:38
  • 수정 2017.09.03 12:4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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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개정될 헌법에 농민의 기본권을 담아야한다는 농촌사회의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할까? 때마침 논의 중인 유엔인권위원회의 ‘농민과 농업노동자 권리 선언(농민권리선언)’은 우리에게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물론이고 당사자인 농민들도 그 존재를 잘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의 연구보고를 토대로 그 내용을 알기 쉽게 짚어본다. 

 

① ‘농민권리선언’은 어떻게 나왔나

② `농민권리선언', 그 의미와 한계

③ `농민권리선언', 앞으로 남은 길

 

농민권리선언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국제농민연대조직인 ‘비아캄페시나(La Via Campesina, 농민의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농민권리선언은 바로 이들이 펼친 식량주권운동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를 토대로 한 개방적 농업에 맞서기 위해 지난 1993년 창립된 이 조직은 뜻을 같이하는 전세계의 농민 단체가 함께하고 있는데, 식량주권운동에 매우 적극적인 우리나라의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역시 가입돼 있다.

비아캄페시나는 창립 이후 적극적으로 식량주권 운동을 펼치며 농민, 특히 소농·가족농의 권리 신장에 앞장서왔다. 농사를 짓고 먹을 ‘그 무엇’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달라는 농민의 요구가 보편화되는 과정에 비아캄페시나의 식량주권운동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송원규 녀름 연구원은 “기존 식량권 운동 진영을 포함해 다양한 국제 시민사회 진영의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권리라는 보편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한 비아캄페시나의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제 그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받을 차례였다. 비아캄페시나는 2000년대 들어 농민권리선언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 2000년 회원조직인 인도네시아농민연합이 ‘농민권리’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자 비아캄페시나는 2002년 ‘농민권리헌장’을 공식 선포하고 이를 토대로 유엔에서 선언문이 채택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결국 2009년에는 농민권리선언의 초안을 만들어 유엔인권위 이사회에 제출하기에 이른다. 2012년 10월, 이사회는 첫 결의안 채택을 통해 정부 간 실무그룹을 신설하고 선언의 내용을 확정할 임무를 부여한다.

이후 총 네 차례의 정부 간 실무그룹 회의와 2건의 결의안 표결·채택, 그리고 1회의 선언문 초안 수정이 있었다. 47개 이사국간의 표결 속 3건의 결의안이 채택되는 과정에서 서방 국가 위주의 반대표는 차츰 줄어(9개국→5개국→1개국) 미국만 남았다. 우리나라 역시 가장 최근의 결의안 채택에서는 반대에서 기권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인권이사국들은 대개 농민권리선언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선언의 내용을 논의하고 각 조항에 세부적인 내용을 추가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내년 혹은 내후년으로 예정된 선언문 채택 표결에서 우리 정부는 과연 찬성표를 던질 수 있을까.

어쩌면 그보다 먼저 등장할 새 헌법 개정안에서 그 답을 미리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한 듯 보이는 보편적 가치에 안타깝게도 현 정부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수고스럽겠지만 농업계의 관심과 노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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