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밀 재고·수매는 중단 … 농민들은 죽을 맛

난망한 밀 재배 상황에 밀 농사 중단 농가 늘어
수매업체도 수매자금 부족해 사채까지 쓰는 상황

  • 입력 2017.09.03 11:26
  • 수정 2017.09.03 11:31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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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우리밀 재배 농민들은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쌀값 폭락으로 어려운 농촌 현실을 탈피하고자 우리밀 재배란 대안을 선택했건만, 이젠 밀 수매마저 안 되는 상황이다. 1만5,000톤의 우리밀 재고는 여전히 각지의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밀 농가들의 수입원마저 끊길지도 모르고, 더 나아가 겨우 버티고 있는 우리밀 농업 근간 자체가 붕괴될지도 모른다.

현 상황은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정부는 2020년 우리밀 자급률 목표를 5.1%로 상정한 뒤, 생산성이 높단 이유로 농민들에게 백중밀 품종을 적극 권장하고 보급했다. 해당 품종에 대한 시장 수요 및 품종의 맛과 질 등에 대한 구체적 분석은 결여됐다. 그 결과 농민들은 백중밀 생산에 적극 나서 자급률을 높였지만, 백중밀이 전체 우리밀 품종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다양성이 손실된 상황이었다. 이때부터 우리밀 재고 사태는 예견됐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재고로 남은 1만5,000톤의 우리밀도 거의 대부분이 백중밀이다.

막대한 양의 재고 미처리로 인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고통 받는 사람들은 밀농사 짓는 농민들이다. 특히 최근엔 각지에서 수매업체들의 수매 중단으로 우려가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대표적 밀 생산지 중 하나인 전남 해남군의 경우, 그 동안 해남의 우리밀을 수매해 왔던 곡물 가공업체 (주)밀다원이 해남 우리밀의 수매를 중단하겠다고 지난 7월 27일 통보했다. 밀다원은 (주)에스피씨 지에프에스(SPC GFS), 즉 삼립 계열의 회사이다.

밀다원은 수매 중단의 이유로 “우리밀 시장의 성장둔화와 소비부진으로 우리 회사는 2016년산 이월재고 및 2017년산 계약 이행물량을 포함해 약 3년치의 과다재고로 18년산 수매 진행 시 회사의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기에 불가피하게 2018년산 우리밀 수매를 중단해야 했다는 입장을 해남군 측에 통보했다.

해남군청 농사팀 김성현 계장은 “해남군 내엔 900여 군데의 우리밀 농가가 있다”며 “농민들은 이미 계약재배를 위한 계약도 다 하고 그에 맞춘 생산계획도 다 잡아놨던 상황”이라며 난처해했다. 밀다원은 현재 해남 우리밀 재고 1,500톤의 소비부터 돼야 2018년도 신규 생산 우리밀 수매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해남군 측은 이에 대해 재고해 달라고 요청 중이나 밀다원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인근 진도군의 경우도 올해 생산한 우리밀 수매가 전면 중단된 상황이다. 진도군의 밀은 한국우리밀농협에서 수매했는데, 막대한 밀 재고량으로 돈을 못 받고 있기에 추가 수매가 안 되고 있다. 곽길성 진도군농민회 회장은 “지금의 막대한 밀 재고량 때문에 우리밀 농가들도 생산 의욕을 점점 잃는 상황”이라며 “지난해 100농가 안팎이던 진도 지역 우리밀 농가가 올해 20농가까지 줄었다. 이 문제(막대한 재고량 및 수매 중단 문제)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우리밀 농가는 더 줄어들고, 최악의 경우 그나마 남은 우리밀 생산기반마저도 파괴될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했다.

상황이 어렵기는 우리밀농협 및 가공공장도 마찬가지다. 우리밀농협 측은 어떻게든 우리밀 농가의 밀 수매를 위해 정부에 알곡을 담보로 20억원의 대출을 받으려 했지만, 그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최성호 구례 우리밀가공공장 대표는 “정부는 그 동안 자급률만 설정하고 생산과 소비 촉진은 농민들이 알아서 하란 식으로 일관했다. 그 정책적 방관이 오늘의 이 사태를 낳았다”고 정부의 밀 정책을 비판했다. 한승호 기자

구례 우리밀가공공장의 경우, 밀 수매자금 마련을 위해 공장 부동산 담보 대출과 법인 임원의 개별 대출금을 활용 중이며, 그걸로도 수매자금을 마련하기에 부족해 사채를 얻기까지 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성호 우리밀가공공장 대표는 농식품부 김영록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상황에 대해 “(우리밀 수매를 위해)구걸하듯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현재, 우리밀가공공장은 계약재배 물량보다 초과 생산된 400톤(함안 240톤, 익산 120톤, 보성 40톤)을 아직 수매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성호 대표는 “정부는 그 동안 자급률만 10%, 5% 식으로 설정하고 생산 및 소비 촉진, 수매 등은 농가와 업체, 농협이 알아서 해란 식으로 일관했다. 그러한 정책적 방관이 오늘의 이 사태를 낳았다”고 말했다. 지금 농민들이 이토록 화가 난 데는 정부가 말로만 우리밀을 살리겠다며, 정책적으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데 그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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