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불량식품③ 그때 우린 고깃집에서 “물 먹었다!”

  • 입력 2017.09.01 15:33
  • 수정 2017.09.01 15:37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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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에 예비사단의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당시엔 훈련소가 식당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 했다. 따라서 끼니때가 되면 소대마다 너덧 명의 식사당번이 커다란 밥통과 국통 따위를 가지고 취사반에 가서, 밥과 부식을 받아 내무반으로 날라다(추진해서) 배식을 했다.

이상락 소설가

어느 날 내가 ‘짠밥’ 추진 당번병으로 차출되어서, 훈병번호 38번 녀석과 함께 국을 받아 들고 내무반으로 향했다. 그 날 메뉴는 소고깃국이었다. 국물이 꿀렁거리는 ‘식깡’을 나눠들고 한적한 모퉁이를 돌아설 무렵, 38번이 국물위에 동동 떠 있던 기름투성이의 고기 한 점을 맨손으로 건져서는 순식간에 제 입속에 넣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녀석은 그 뜨거운 고깃덩이를 한참동안 입에서 호로로, 굴리더니 도저히 못 참겠던지 도로 국통 안에다 뱉어버렸다.

“에이, 이런 던적스런 놈!”

난 녀석의 엉덩이를 한 번 걷어차 주었다. 그날 국통 안에 들어있던 고기 건더기는 그것 하나뿐이었다. 당연히 38번이 뱉은 소고기 건더기는 내무반장이 맛나게 먹었다.

기성부대에서도 보름에 한 번 가량 고깃국이 나왔지만 배정된 부식을 사단에서 떼먹고, 연대에서 꼬불쳐 먹고…그래서 말단 소대의 사병들에게 돌아온 것은 국물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조적으로 그 국을 ‘황소가 강 건너간 국’이라 하여 황우도강탕(黃牛渡江湯)이라 불렀다. 어떤 때는 짓궂은 사병이 “앗다, 오늘은 국물마저 시원찮은 것이, 소가 아예 장화를 신고 건너간 모냥이네”, 그랬다. 그때 우리는 고기에 매우 굶주려 있었다. 게다가 소고기라면 더욱.

그 무렵에 적발된 부정식품 제조행위 중에는, TV 뉴스를 시청하는 시민들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던 사례가 있었다.

“그때 우리 합동 단속반이 이틀 동안의 잠복 끝에 드디어 현장을 적발했지요.”

당시 보건사회부 직원 오균택 일행이 적발했다는 현장은 소에게 물을 먹이는 장면이었다. 자고로 ‘소를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게 할 수는 없다’는 유명한 격언이 있거늘, 거기서 적발된 도축업자는 소에게 물을 그야말로 ‘억지로’ 먹이다 들통이 났다. 현장에서 취재 기자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범인들은 소를 도축장 옆의 후미진 이곳으로 끌고 와서, 바로 이 호스를 강제로 소의 목에다 넣고서 물을 먹였습니다. 심지어는 「컴프레서」라는 압축기를 사용해서 수돗물을 소 뱃속에다 강제로 쏟아 넣기도 했는데….”

그것은 불량식품이니 부정식품이니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엄두를 내서는 안 되는 잔학한 동물학대 행위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근수를 늘리기 위해서다.

범인들은 소를 도살하기 일정 시간 전에 우선 소금물을 먹여서 갈증을 일으켜 소가 스스로 물을 들이켜게 했다. 그런 다음 도살 직전에는 컴프레서에 연결된 호스를 목 너머로 밀어 넣고 기계를 작동하여 강제로 물을 쏟아 넣었다. 억지로 먹인 물이 소변으로 배출되기 직전에 도살을 하면 물의 무게만큼 중량을 늘릴 수 있었던 것이다.

“강제로 몸속에 들어간 물이 세포를 통해 흡수되면 고기의 중량이 늘어나지요. 예를 들어 물 한 말만 먹여도 20킬로그램을 늘릴 수 있거든요.”

소고기의 수분 함량은 대개 60~65% 가량인데 그렇게 강제로 물을 먹이고 나면 70%를 넘게 된다고 했다.

물론 식당에 공급된 물 먹인 소고기는 고기의 양을 속인 것일 뿐, 인체에 해가 되는 유해식품은 아니다. ‘물 먹인 소고기’는 이후로도 수차 적발되었다. 그래서 당시 큰 맘 먹고 고기 집에 외식 나온 사람들은 식사 후 계산대에서 이렇게 따지곤 했다.

“메뉴판에 적힌 대로 식대를 다 받아요? 물 값은 빼고, 고기 값만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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