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실험정신에 반하다

  • 입력 2017.09.01 15:32
  • 수정 2017.09.04 17:03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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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유기농 전문가의 강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을농사준비로 몸보다 마음이 바빠지는 철인데도 일 걱정일랑 훌훌 털고 교육에 참석을 했습니다. 유기농으로 고추농사를 얼마나 잘 짓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던 까닭에요.

조는 둥 듣는 둥 어중이떠중이 공부를 하다가 교육말미에 예의 그분을 만났습니다. 외모만으로는 강의의 질을 평가하기 어려우리만치 평범한 농민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의와 함께 반전이 시작됐습니다.

반복되는 실험, 그 결과를 정밀하게 적용하는 태도는 농민이 아니라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분 같았습니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정확하게 낚아채서 명확한 설명으로 되물을 필요가 없도록 했습니다. 여기저기 감탄의 목소리가 연발해서 터져 나오고 비로소 수강생들이 등허리를 곧추 펴고 자세를 가다듬어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중앙일간지 기자생활을 접고 귀농한 지 20년 차의 농민이라는 이력도 드라마틱했다만 그것 보다는 농사에 대한 연구적 자세와 남다른 농사 실력이 확실히 돋보였습니다. 실험정신이 강한 농민들이 대부분 실패를 거듭하는 바람에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 하는 분들을 여러 번 봐 왔는데,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다른 이 분을 보며 기분이 좋았다가도 슬퍼지는 것이 있었으니 역시나 여성농민적 관점이지요.

그 분의 실력이 워낙 출중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렇더라도 ‘안 받침없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과 ‘여성농민의 끝없는 실험정신이 통하기나 할까?’ 하는 불손한(?)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럴 때 떠오르는 단상이 있었으니 수박농사꾼의 이야기입니다.

부부가 수박농사를 짓는데 늘 아내더러 잘 못 관리했다고 하도 남편이 타박을 줘서 어느 날부터 비닐하우스의 왼쪽 이랑은 아내가, 오른쪽은 남편이 나눠서 수박순을 관리하기로 했다합니다. 장난기와 불신이 담긴 내기였겠지만 막상 지나고 보니 아내의 수박관리가 월등히 좋았다 합니다.

내막도 모른 체 다짜고짜 폄훼되기 십상인 여성농민의 노동에 실험정신이 포개지면 참 많은 갈등이 따르겠지요. 그 갈등을 딛고서 주변의 요구 따위에 아랑곳없이 성과를 내는 연구적 여성농민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리한 통찰력과 풍부한 지적 호기심을 가진 여성농민들이 본인의 기질을 조금은 뭉개고 두루뭉술하게 세상에 묻히기도 합니다. 아깝게도 말이지요.

아참, 좋은 정보 하나 알려드릴까요? 거세미나방 애벌레는 아교성분을 좋아해서 저녁에 달걀껍질을 두었다가 아침에 가보면 오글오글 모여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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