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농활] 8월 말, 김장을 준비하다

  • 입력 2017.09.01 13:43
  • 수정 2017.09.01 13:47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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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농활. 농촌활동 또는 농민학생연대활동의 줄임말이다. 주로 대학생들이 방학을 맞이해 농촌지역의 부족한 일손을 거들며 농촌의 실정을 이해하고 노동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활동이라고 한다. 하지만, 요즈음 대학생 중 농활을 경험해 본 이가 몇이나 될까? 취업난에 방학마다 부족한 학점과 스펙을 채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 말이다.

역시 첫 농활을 준비하며 막막함과 불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일바지를 챙기고 잠자리에 들면서도 마음 한 구석 ‘남의 농사를 망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이 같은 초보 농활꾼을 덥석 받아준 곳은 강원도였다. 김덕수 전농 강원도연맹 사무처장이 일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다. 감사한 마음에 새벽 일찍 일어나 서둘러 춘천으로 향했다. 7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강원도는 몹시 추워 콧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김 사무처장의 차를 얻어 타고 밭으로 향하는 길, 추워하는 나를 보며 사무처장은 “일 시작하면 더워요”라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땀이 날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다.

춘천시 신북읍 지내리 4,500평의 밭에 무와 배추를 심는 일에 나를 제외한 10명이 동원됐다. 그 중 6명은 베트남서 온 이주노동자였고 나머지는 동네에 거주하는 할머님들이었다. 농촌의 일손이 얼마나 부족한지 또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농촌이 유지되기 힘든 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7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기에 서둘러 장화를 갈아 신고 씨앗을 받아 밭으로 걸어 들어갔다. 전날 비가 와 발이 푹푹 빠져 걷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먼저 일을 시작하신 할머님들께 꾸벅 인사를 드리고 구멍마다 2알씩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구부정한 자세로 열심히 씨를 뿌리다 보니 반대편 고랑에서 일을 하시던 할머님과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됐다.

최고령자이신 조화형(81) 할머니는 “요새 비가 많이 와서 무며 배추며 한참 심어야 되는데 좀 늦었어. 지금 심으면 10월 말에는 수확할 수 있어”라며 이것저것 가르치기 바쁘다. 이어 자신이 직접 돌봐 키운 손녀를 닮았다며 기자를 향해 걱정 어린 말씀 한 마디도 건내셨다. “언니 처음 하는 거 맞아? 잘 하네~ 그래도 쉬엄쉬엄 해야지 안 그럼 다음 날 몸살 나서 고생해.” 옛 어르신 말씀 틀린 게 하나 없다.

무 파종이 끝나고 배추 모종을 옮겨심기 전 오전만 하고 가라며 등을 떠미신 할머님의 말씀을 어기고 일손을 돕겠다는 일념으로 오후까지 버텼다. 결국 다음 날 다리며 허리에 파스를 안 붙이고는 못 견딜 정도로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마지막까지 남아 배추를 다 심지는 못했지만 한 포기의 배추가 식탁에 오르려면 얼마나 고된 작업들을 거쳐야 하는지 직접 체감하기 충분했다. 파종 이후 더 많은 과정들이 남아있는 게 믿기 힘들 정도다.

김장은 여전히 빼먹을 수 없는 연례행사기에 김장철만 되면 소비자는 잔뜩 오른 배춧값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싼 가격을 탓하기 전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우릴 위해 노력하는 이 땅의 농민들을 잠시라도 떠올리면 좋겠다. 정작 값이 올라도 그들에게 돌아가는 이득은 턱없이 부족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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