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스스로 말하게 하라

  • 입력 2017.08.31 21:35
  • 수정 2017.08.31 21:36
  • 기자명 정은정 <대한민국치킨전> 저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바빴다. 계란 때문이다. 기실 정초부터 계란 때문에 바빴다. AI가 산란계를 휩쓸면서 계란 값이 올라가자 그때부터 시장이, 아니 세상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를 따질 필요도 없다. 역시 계란이 먼저다. 고기닭인 육계에 내려친 벼락보다는 산란계에 내려친 벼락이 더 셌다. 계란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1961년에는 한 사람이 일 년에 31개 정도의 계란을 먹었지만 지금은 256개 정도를 먹는다. 생활의 진보는 섭취한 계란의 양만큼 이뤄낸 것이다.

팔당 두물머리에 다녀왔다. 이명박의 4대강 싸움으로 유명한 그곳 맞다. 살충제 계란 사태에 팔당생명살림영농조합 농민들도 시달리고 있었다. 양계 농민이 아니어도 ‘친환경의 배신’ 이란 말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니 농민들 스스로 위축돼 그저 모여서 답답한 마음이라도 나누자는 뜻이었다. 김밥 20줄(계란 들어간!)을 맞춰놓고 시작한 집담회에는 농민, 행복중심생협 상무, 소비자, 정당인, 지역 주민이 참석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5,000수 정도 닭을 돌보고 유정란을 생산하는 31년 경력의 김보영씨는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자발적으로 7월 29일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계란 검사를 의뢰했다. 결과는 ‘불검출’. 그럼에도 군청에서는 8월 검사부터 적용된다며 일단 출하정지 명령을 내렸다. 이틀 만에 또 검사를 받아야 했다.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래도록 양계를 하는 동안 계란 값은 오르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요구는 많아져 난각 코드기계를 900만원에 들여놓았다. 그런데 그 기계가 말썽이어서 이내 또 몇 백을 들여 새로운 기계를 들여다 놓았다. 식용잉크 값은 또 왜 이리 비싼지. 서류싸움 반 시설싸움 반인 HACCP은 받기도 어려웠지만 유지는 더 어렵다는 이야기. 자주인증으로 유기농사양을 유지하고 있는 팔당생명살림 농민들은 ‘싸고 안전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무슨 수로 생산하느냐며 소비자들의 불가능한 주문에 질렸다고도 했다. 소비자는 또 나름대로 정확한 정보도 없어서 불안감도 크고,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을 받은 양계 농가의 60%가 걸렸으니 이번 사태에 큰 실망을 했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서로의 이해를 구하는 생협은 마이너스 살림에 허덕거리고 있느라 충분한 교육사업을 펼치지 못하고 있어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내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온갖 생협 매장과 대형마트에서 친환경 제품을 헌팅하는 ‘유기농 쇼핑족’이 늘어가고 있으니 오래도록 생협을 지켜온 활동가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이런 분위기라면 계란 산업마저도 대기업에 넘겨주자는 말들이 다시 나오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보탰다.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 갔고 김밥도 얼추 바닥이 드러났다. 죄인이 돼버린 농민들은 어디에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고 소비자는 또 춤추는 언론에 더욱 혼란을 겪는 중에 계급장 떼고 일단 만났다. 뚜렷한 결론을 내야한다는 강박보다는 당사자인 우리가 문제를 스스로 드러내는 그 ‘과정’이 더욱 중하다. 과정중심이 아니라 결과중심의 친환경 인증제도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난 지금, 또 결과에만 매달려서는 안 될 일이다. 두 물줄기가 만나 ‘두물머리’라 불리는 팔당에서 먼저 만났으니 이런 만남들이 곳곳에 퍼지기를. 스스로 말하게 하라! 이것이 민중교육의 창시자 프레이리의 외침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스스로 말을 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