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불량식품② 수구레를 아십니까

  • 입력 2017.08.27 17:54
  • 수정 2017.08.27 18:5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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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는 물론이고 해방이후 상당기간까지도 당장 끼니 잇기가 어려운 형편이었으므로, 먹을거리의 성분이나 위생 상태를 따질 형편이 못 되었다.

이상락 소설가

우리나라에 식품위생법이 생긴 것은 5.16 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도였다. 이 법에 근거해서 부정·불량 식품을 단속하였는데, 그 관련 업무는 당시의 보건사회부 관할이었다. 그런데 식품 중에서도 고기를 주원료로 하는 식육제품이나, 우유를 주원료로 하는 유가공품은 농림부에서 관리하였다. 그래서 불량식품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경우 정부 부처들 사이에 관할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왕년에 식약청 과장을 지낸 오균택 씨의 회고다.

“식육제품의 경우에도 고기 함량이 50%이상 되는 제품은 농림부에서 관리하고, 그 미만인 제품은 보사부에서 관리를 했지요. 그래서 웃지 못 할 일이 생겼는데, 만두의 경우 만두피는 식품위생법에 의거하여 보사부에서 허가·관리를 하고, 그 속에 든 고기는 또 농림부 관할이 된 거지요. 물론 나중에 관련 제품들의 관할 부처가 다시 이리저리 바뀌기도 하고….”

그래서 1976년부터는 모든 행정기관이 연합해서 단속에 나섰는데, 이것이 바로 ‘부정불량식품 합동단속반’이다. 보건사회부 7급 공무원 시절부터 암행감사반의 일원이 되어 부정·불량 식품 제조업자를 색출하기 위해 전국을 누볐다는 오균택 씨, 그의 구술을 바탕으로 그 단속현장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냉동·냉장시설이 없던 시절. 식품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식품의 부패와 변질을 막는 일이었다. 그래서 2차 대전 당시에 군인들에게 공급할 식품을 장기보관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약품이 바로 포름알데히드 수용액인 포르말린이었다. 지금이야 국제적으로 식품에 첨가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제하고 있어서 그것을 식품의 방부제로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60년대 이후에도 음성적으로 두루 사용되었다.

서울 동대문 시장이나 남대문 시장에서는 좌판 상인들이 통로 한가운데에다 음식을 잔뜩 쌓아놓고 팔았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인기 있는 먹을거리는 수구레였다.

어느 날 오균택을 비롯한 암행 단속반이 동대문 시장의 바로 그 좌판음식점 거리에 떴다. 그들이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서 단속대상으로 점찍은 식품이 바로 수구레였다.

“어서 오세요. 수구레 한 접시 썰어드릴까? 아, 엊그제 와서 수구레 사갔던 그 분들이구먼.”

“아주머니네 수구레 사다 먹어봤더니 맛이 기막히던데요. 사실은 미아리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데, 우리도 수구레 좀 삶아서 팔아보려고요. 그거 납품하는 사람이 이때쯤 온다고 해서….”

“조금 있으면 올 테니 기다려 보세요.”

사전에 성분분석을 통해서 인체에 유해한 불량식품임을 이미 확인했으니, 이제 식재료 공급업자를 현장적발하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의 그 수구레 식재료 공급업자가 좌판거리에 나타났고, 그는 오균택 일행의 “불량식품 단속반에서 나왔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망치려다 제풀에 넘어져 붙잡혔다.

수구레란 쇠가죽 안쪽에서 벗겨 낸 질긴 고기를 일컫는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라는 것일까?

“마장동 도축장에서 소를 도축할 때 껍질은 벗겨서 내버려요. 그걸 가져다 가죽 안쪽에서 비교적 연한 부분을 떼어다 파는 게 수구레인데, 당시 적발했던 수구레는 피혁 공장에서 가져온 것이었어요.”

피혁공장에서는 도축장에서 가져온 소의 껍질을, 일단 부패하지 않도록 포르말린을 뿌려서 방부 처리를 한 다음에 가죽을 얻어낸다. 그런데 악덕 업자가 피혁공장에서 독한 포르말린으로 처리된 바로 그 가죽 부스러기를 가져다가 식재료로 팔았던 것이다. 그 일이 세상에 알려져서 한바탕 떠들썩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시장 통에서 그 질긴 가죽고기를 악착같이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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