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고양이에게 맡겨진 생선

  • 입력 2017.08.25 12:04
  • 수정 2017.08.25 12:05
  • 기자명 임영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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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살충제 계란’ 사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계란에서까지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기도 했다. 여러 가지 비판 중 주목할 것은 정부가 친환경 인증을 민간에 맡기는 바람에 인증 자체가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사실 국민의 먹거리 혹은 건강과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에서는 특정 제품의 기준을 정하거나 판매여부 등을 결정하기 위해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위원회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그 입장이 서로 다르다. 생산자는 제품의 자격요건을 최대한 완화된 상태로 비싼 가격에 공급하려고 하고 소비자는 깐깐한 기준을 세우고 이에 부합하는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소비하려고 한다. 따라서 정부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중간에서 생산자의 입장과 소비자의 입장을 고려해 최소한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은 제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소비자의 입장이 더 적극적으로 반영된 경우도 있다.

양 팀이 공정하고 투명한 축구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심판이 필요하다. 이때 심판은 양 팀 중 어느 팀에도 속하지 않고 오로지 축구 경기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심판이 어느 한 팀에 속해있다면 이 경기는 상대 팀에게 매우 불리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농산물 역시 생산자와 소비자는 서로 입장이 다르다. 이에 관련 법령에서는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하여 이곳에서 심의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위원회는 양쪽의 입장을 동등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인적 구성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보는 것처럼 한 쪽 입장만 일방적으로 반영할 가능성이 높은 위원회들이 있다. 우선 식품위생법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식품의 기준과 규격에 관한 사항 등을 조사·심의하기 위해 식품위생심의위원회를 둔다. 그런데 법령에서 정하고 있는 위원들의 구성이 심상치 않다. 위원으로 시민단체에서 추천을 받은 사람도 있지만 생산자측을 대변하는 영업에 종사한 사람과 한국식품산업협회의 추천을 받은 사람이 전체 위원의 3분의 1 이상이어야 한다. 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협회는 전적으로 생산자의 이익을 대변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러한 위원이 전체 위원 중 3분의 1 이상이므로 시민단체가 보유한 3분의 1 지분을 제외하고 모두 생산자 측에서 위원으로 참석해 생산자에 유리한 의사결정을 내릴 것은 당연하다.

또한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에 따라 건강기능식품의 기능성에 대한 표시·광고 심의에 관한 업무를 아예 영업자들이 구성원으로 돼있는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가 위탁받아 수행할 수 있다. 실제 건강기능식품 사업을 영위하는 자들로 구성된 협회가 기능성에 대한 광고를 심의할 경우 아무래도 자신들에게 유리하고 소비자에게는 불리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위원회를 구성하는 법령을 살펴보면 위원회 구성이 생산자 또는 제조자에게 유리한 사례는 무척 많을 것이다. 우리가 법령을 통해 위원회를 만들고 의사결정권을 준 것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다른 상황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한 조치이다. 하지만 현재 운영되고 있는 법령 중에는 아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경우와 같은 위원회 구성에 대한 내용이 있다. 특히 먹거리와 관련된 사항은 철저하게 소비자 입장에서 깐깐하게 그 기준을 정해야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위원회가 중립적이고 합리적으로 구성되도록 해야 한다.

소위 ‘살충제 계란’ 사태를 통해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대책이 제시됐다. 이 와중에도 최소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결정이 가능한 위원회 구성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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