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서도 복숭아는 탐스럽다

  • 입력 2017.08.19 18:55
  • 수정 2017.08.19 19:16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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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은씨가 무릎 높이까지 자란 풀과 빗물을 가득 머금은 나뭇가지를 헤치고 복숭아를 따고 있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복숭아의 붉은 빛깔이 오롯이 빛난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이른 새벽부터 내린 비는 어느새 장대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회용 우비를 입었건만 지속된 장대비에 상·하의 모두 속절없이 젖어들어 축축했다.

지난 14일 복숭아 주산지 중 한 곳인 경북 영천시 금호읍 냉천리에선 복숭아 수확이 한창이었다. 옷이 젖든 말든 개의치 않던 농민들은 “복숭아는 비가 쏟아져도 때가 되면 따야 한다”며 7~8년생 복숭아나무가 수두룩한 과수원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날 수확에 나선 복숭아는 백도였다. 잎이 무성한 나무엔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복숭아가 빗물을 머금고 매달려 있었다. 탐스럽게 익어 빨간빛이 살짝 감도는 복숭아를 흠이 나지 않게 돌려 땄다. 손에 잡힌 복숭아는 제법 묵직했다.

“아무래도 비가 오면 해가 날 때보단 당도가 떨어져. 그런데 늦게 따면 물러져서 버릴 수밖에 없거든. 이럴 때 내리는 비가 쓸모없는 비라.”

복숭아나무 키에 맞춰 무릎을 꿇고 복숭아를 따던 최상은(56)씨가 바구니 가득 담긴 복숭아를 리어카에 옮기며 말했다. 몇 달 전만해도 극심한 가뭄에 이제나저제나 비 소식을 기다리며 복숭아밭에 물을 대느라 고생했던 그였다.

최씨의 아버지인 최해석(80)씨도 일손을 보탰다. 사다리를 타거나 아예 나뭇가지를 밟고 올라가 손이 닿기 힘든 곳의 복숭아를 수월하게 따 바구니에 담았다. 얼굴은 땀과 빗물로 범벅이 됐고 과수원의 풀과 나뭇가지 사이를 헤치고 다니느라 바지는 젖어 몸에 들러붙었다.

함께 작업에 나선 태국서 온 이주노동자는 과수원을 오가며 리어카에 가득 실린 복숭아를 트럭으로 옮겼다.

3시간여 남짓 수확 작업이 끝나자 선별 및 포장작업을 위해 과수원 인근의 농가로 이동했다. 자동선별기에 복숭아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자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며 무게별로 복숭아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최씨는 선별된 복숭아를 4.5kg 상자에 맞춰 골라 담았다.

이어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장동란(79)씨가 흠집이나 벌레 먹은 여부 등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복숭아를 하나씩 종이로 감쌌다. 복숭아 크기별로 13과에서 20과까지 상자에 담겼다.

오전에 수확한 복숭아 선별 및 포장이 끝났다. 일부 흠집 난 복숭아를 빼고도 약 70상자가 차곡차곡 쌓였다. 최씨는 “하루 평균 100박스는 출하하는데 오늘은 비 때문에 양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시장에서 인기있는 복숭아는 4.5kg 상자 기준 14~15과 크기다.

그의 복숭아 또한 지역의 금호농협을 통해 최근에 대전청과로 출하됐는데 청과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했다. 당시 경매가는 1만9,000원(4.5kg 기준). 최씨는 “한 청과에 지속적으로 납품을 해야 상인들도 상품을 알아보고 가격을 (좋게) 준다”며 “가격이 너무 싸거나 비싸도 농민들에겐 좋지 않다. 적절한 수준의 가격이 오래 지속돼야 보탬이 된다”고 귀띔했다.

오전 내내 줄기차게 내리던 비는 잦아들긴 했으나 그치진 않았다. 잠깐의 휴식 후 오후에 행복중심생협으로 출하할 복숭아를 수확하기 위해 그는 옷 마를 새도 없이 우비를 다시 입었다. 여러모로 야속한 비로 인해 당도는 조금 떨어졌을지언정 무르기 전 복숭아를 수확해 소비자에게 최상의 품질로 전달하려는 그의 정성만큼은 이날도 최고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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